[신앙칼럼-허정덕 목사] 취소되지 않는 은혜

허정덕 목사(시애틀물댄동산교회 담임)

 

취소되지 않는 은혜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철저하게 '조건부' 원리가 작동하는 냉혹한 세상입니다. 직장에서는 쉼 없이 성과와 실적을 증명해야 하고, 인간관계조차도 필요와 신뢰라는 조건이 충족될 때만 아슬아슬하게 유지됩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도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는 현실 속에 살다 보니, 우리는 무의식중에 하나님과의 관계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오해하곤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매일 넘어지고 실수투성이인데,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실까?’, ‘나에게 주셨던 은혜와 사랑을 철회하시지 않을까?’라는 영적 불안감이 무겁게 우리를 짓누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얄팍한 생각을 뒤엎는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로마서 11:29).” 이 짧은 문장 속에는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결코 취소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주적인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스파이더맨 2>를 보면 이 의미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피터 파커는 어느 날 갑자기 거미줄을 쏘는 초능력을 잃어버리는 ‘웹 블록(Web Block)’ 현상을 겪습니다. 영웅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 학업, 그리고 연인 메리 제인과의 갈등 등 일상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그를 실존적인 위기로 몰아넣었고, 결국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능력이 일시적으로 마비된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을 영원히 빼앗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을 온전히 수용했을 때 그의 초능력은 즉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Charisma)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적 연약함으로 인해 우리가 그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거나 잘못 사용할 뿐, 하나님은 결코 그 선물을 후회하시거나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는 자서전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자신의 회심의 과정에 대해 말하기를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처럼 끈질기게 추격당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으로 끝까지 쫓아오시는 하나님께 결국 두 손을 든 그는 스스로를 “전 영국을 통틀어 가장 내키지 않는 회심자”라 부르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일시적으로 외면한다고 해서 결코 중단되지 않는 강권적인 사랑입니다.

결코 후회하심이 없는 이 완벽한 사랑 앞에, 불완전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더 테레사는 평생을 인도 빈민굴에서 헌신하면서도 빈곤이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신실하라고 부르셨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화려한 '성공'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내는 '신실함'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흠결과 연약함에 너무 시선을 고정하지 마십시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미래에 저지를 모든 실수와 넘어짐, 심지어 배신까지도 다 ‘미리 아시고’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부르셨기에, 그분의 결정에는 결단코 후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오늘 우리의 모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변덕스러운 나의 감정이나 세상의 조건부 패러다임이 아니라, 한결같은 그분의 신실하심에 기대어 보십시오. 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맹목적이고 강권적인 사랑에 힘입어, 오늘 하루도 당신에게 주어진 소명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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