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허정덕 목사] 생명보다 귀한 은혜의 복음

허정덕 목사(시애틀물댄동산교회 담임)

 

생명보다 귀한 은혜의 복음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시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사명이나 헌신의 자리 앞에서 깊은 두려움을 느끼며 뒷걸음치곤 합니다. 앞으로 감당해야 할 희생이 너무나 크고 무겁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 2,000여년 전에 밀레도 해변에서의 사도바울은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그에게는 그의 목적지인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영광스러운 환영이나 편안한 노후가 아니라,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성령의 분명한 경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눈물로 배웅하는 동료들에게 비장한 선언을 남깁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고백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는 표현입니다. 요즘 텍스 보고 시즌인데요, 바울은 냉철한 영적 회계사가 되어 자신의 삶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한쪽 저울에는 육체적 안락과 생명을, 다른 쪽에는 '은혜의 복음'을 올렸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복음의 영광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자신의 생명은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제로(0)'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안전한 항구에 머물기보다, 결박과 환란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기꺼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가야 할 사명의 길을 '드로모스(Dromos)', 즉 정해진 트랙을 끝까지 달려야 하는 경주로 묘사했습니다. 이 경주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완주'입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햄스트링이 파열되어 쓰러진 데릭 레드먼드가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끝내 결승선을 통과했듯이, 우리의 영적 경주 역시 우리를 부축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우리가 쓰러질 때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내가 결승선까지 함께 가주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토록 목숨을 걸고 전하려 했던 '은혜의 복음'은 무엇일까요? 

영국의 설교자 스펄전은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은 목숨을 바칠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아무런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만 얻어집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 즉 ‘복음’인 것입니다. 

대공황 시절, 뉴욕의 라과디아 시장은 할머니가 훔친 빵값 10달러를 자신의 지갑에서 꺼내 대신 지불했습니다. 법의 공의를 지키면서도 자비로 그 값을 치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온 우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와 우리가 치러야 할 죗값을 당신의 핏값으로 완벽하게 대신 치르셨습니다. 

이 압도적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생명을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없게 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고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명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장 영광스러운 특권이 됩니다.   

오늘 여러분의 영적 장부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잠시 있다 사라질 세상의 성공입니까, 아니면 영원히 변치 않는 은혜의 흔적입니까? 우리가 가진 유한한 생명을 은혜의 복음이라는 영원한 가치 앞에 던질 때, 인생은 비로소 위대한 경주가 됩니다. 

여러분의 어깨를 부축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고유한 트랙을 끝까지 완주하십시오. 그 길 끝에는 "다 마쳤노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쁨의 결산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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