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세 위법' 판결에도 품목관세 여전…500조 대미투자 압박 지속될 듯
- 26-02-21
車·반도체 등 주력상품 품목관세는 그대로…수출 전선 압박 여전
트럼프 "대체 관세 수단 있다" 맞불…대미 투자 압박 지속될 듯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단했지만, 한국의 대미 통상 환경이 크게 달라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자동차·반도체·철강 등 한국의 대미 수출 40%를 차지하는 품목 관세가 그대로 유지되고,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무역법을 활용한 추가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관세 압박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관세 인하 조치와 맞바꾼 3500억 달러(약 505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도 큰 틀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상호관세는 법적 근거를 잃었지만, 품목 관세와 추가 통상 압박 수단이 여전히 남아 있어 한·미 간 기존 합의 구조가 당장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연방대법원은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의 법적 근거로 삼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대통령에게 현재와 같은 방식의 글로벌 관세를 부과할 권한까지 위임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가 위법이라는 하급심 판단을 최종 확정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4월 IEEPA를 근거로 한국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했으며, 이후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통해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번 판결로 한국산 제품 전반에 일괄 적용돼 온 15% 상호관세는 법적 근거를 잃게 됐지만, 무역확장법 232조 등을 근거로 자동차·철강·반도체 등에 부과된 품목 관세는 유지된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는 IEEPA가 아닌 다른 무역법을 활용해 관세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발표 직후 "우리에게는 대안이 있다"며 "무역법 122조에 따라 10%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고 밝혀 IEEPA를 대체할 새로운 형태의 관세 전면 도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번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대미 수출품 대부분에 일괄 적용되던 15% 상호관세는 법적 근거를 잃었지만, 품목별로 부과되는 '품목 관세'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주요 대미 수출 품목별 체감 영향은 엇갈릴 전망이다.
2025년 연간 대미 수출액은 1228억 7000만 달러로, 주요 수출 품목은 자동차(259억 9000만 달러), 반도체(133억 7000만 달러), 일반기계(123억 2000만 달러), 자동차 부품(75억 5000만 달러), 석유제품(54억 1000만 달러) 등이다. 이 가운데 일반기계와 석유제품은 이번 판결로 상호관세 부담이 줄어드는 반면, 자동차·반도체·철강은 별도의 품목 관세가 유지돼 관세 리스크가 상당 부분 지속되는 구조다.
문제는 IEEPA가 아니라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품목관세다. 미국이 232조 관세를 이미 부과했거나 검토 중인 자동차, 반도체, 철강 부문은 한국의 대미 수출액의 약 40%를 차지해, 상호관세가 무효화되더라도 전체 관세 부담이 크게 줄어들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산업의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지를 상무부가 조사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대통령이 해당 품목에 관세·쿼터·수입 제한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현재 미국은 이 조항을 근거로 한국산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15%, 철강에 50%의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조사 종료 후, 백악관이 미국으로 수입됐다가 제3국으로 재수출되는 반도체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발표한 상태다. 이 조치의 주요 대상은 인공지능(AI)용 첨단 비메모리 칩과 관련 장비로, 한국이 강점을 가진 일반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직접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다만 백악관이 필요시 232조 관세 대상을 추가 확대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둔 만큼, 한국 반도체 업계로서는 향후 관세 적용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또 일반기계류에 포함되는 '로봇 및 산업용 기계' 역시 지난해 9월부터 상무부가 232조에 따른 품목 관세 조사에 착수한 상태로, 향후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이 남아있다.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2026.2.11 ⓒ 뉴스1 황기선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직후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전 세계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무역법 122조는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 등 근본적인 국제지불 불균형이 발생할 경우 대통령이 수입품에 대해 최대 15%의 관세 또는 수입 쿼터를 최장 150일간 부과할 수 있게 한 조항이다.
122조 관세는 특정 품목이 아니라 전반적인 수입품에 일괄 적용된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IEEPA에 따른 상호관세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한국 입장에서는 대미 수출품 전반에 부과되던 15% 상호관세가 10% 글로벌 관세로 조정되는 셈이어서, 관세율이 다소 줄어질 수는 있지만 '전 품목 관세' 구조 자체는 유지되는 결과가 된다.
통상 업계와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122조 외에도 다른 통상 수단을 병행해 압박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중국 등 특정 국가나 품목을 겨냥한 보복관세에 활용돼 온 무역법 301조,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항인 201조, 불공정 무역행위를 겨냥한 338조 등이 대체 수단으로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한국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이행이 더디다며 한국산 자동차와 상호관세 전반을 15%에서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위법 판결로 상호관세는 효력을 상실했지만, 품목 관세와 추가 관세 부과 수단이 여전히 남아 있고 통상과 안보·공급망 정책을 연계하는 기조도 유지되고 있다. 또한 한국에 앞서 일본이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확정 지은 만큼, 한국에 대한 투자 압박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한국이 관세 인하와 맞바꾼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포함한 기존 합의 틀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위법성 판단 여부와 무관하게 관세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이라며 "이번 협상은 통상뿐 아니라 대미 투자, 안보, 원자력 협정 등 복합 의제가 얽혀 있어 기존 합의가 쉽게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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