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허정덕 목사] 손바닥에 새긴 사랑

허정덕 목사(시애틀물댄동산교회 담임)


손바닥에 새긴 사랑


화려한 SNS 속 세상은 매일이 축제 같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나만 홀로 멈춰 서있는 듯한 기분, 나름 열심히 살았으나 남은 것은 폐허뿐인 것 같은 상실감은 우리를 ‘잊혀짐’과 ‘절망’이라는 깊은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2,600여 년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떠올리며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이사야 49:14)고 탄식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은 그 절망의 끝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가장 세밀하고도 강력한 사랑의 고백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사랑인 '모성애'를 들어 대답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15)는 선언입니다.   

이 사랑을 증명하는 역사적 실화가 있습니다. 1950년 12월, 6ㆍ25 전쟁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한 만삭의 어머니가 피난길에 홀로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녀는 갓 태어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 아기를 감싸고, 벌거벗은 몸으로 아기를 덮어 체온을 나누었습니다. 

다음 날 미군 장교가 발견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얼어 죽어 있었지만, 그 품 안의 아기는 살아 남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성애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지독한 모성애조차 극한의 상황에서는 잊혀질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감상적인 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십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이사야 49:16)라는 말씀에서 '새기다'는 지워지는 잉크로 쓴 것이 아니라, 살을 파내어 영구적인 자국을 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문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못 자국으로 우리의 이름을 그분의 손바닥에 영원히 새기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주님은 손바닥의 상처를 보며 우리를 기억하며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무너진 현실 너머를 보게 하십니다.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16)라는 말씀은 우리 눈에는 무너진 성벽의 잔해만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 앞에는 '재건될 성벽'의 완벽한 설계도가 항상 펼쳐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1889년 시애틀 대화재는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었지만, 시애틀 시민들은 그 자리에 단순히 건물을 다시 짓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반을 약 7미터 높이는 '리그레이딩(Regrading)'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를 새롭게 설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옛 거리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역사의 흔적으로 남았고, 그 위에는 더 견고하고 현대적인 시애틀이 세워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고난이라는 잿더미를 기초 공사로 삼아,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더 영광스러운 미래를 건축하십니다. 현실이 폐허 같아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이사야 49:18)는 약속처럼, 당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조감도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무너진 성벽 너머에서 이미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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