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공순해] 또다시 내가 모르는 것
- 26-02-09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또다시 내가 모르는 것
의도적 배치일까. 신문에 대조되는 제목의 기사 두 개가 나란히 떴다.
‘다 쓴 유니폼 1만 벌로 벤치 만든 신세계 백화점의 색다른 기증’
‘하루 딱 세 개만 판매하는 신라호텔 50만 원짜리 크리스마스 케이크’
제목만으로도 신새벽부터 생각의 골이 얽힌다.
연말이다. 삶은 돌아보면 다람쥐 쳇바퀴. 가난한 이웃 구제, 운운하면 어김없이 그 철이다. 신세계 백화점의 색다른 벤치도 그중 하나 아닐지. 물론 기업 판촉 활동의 일환이겠지만 그래도 여기선 지구 자원 재활용의 미덕이라도 챙길 수 있다.
먹어서 없애는 50만 원짜리 호텔 케이크란 어떤 걸까. ‘고급스러운’이란 어휘에만도 매료돼 오픈 런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니 50만 원도 선뜻 지불할 용의가 있겠으나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인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세상을 다녀가신 분을 기리는 날이다. 다시 말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일 년에 한 번쯤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날이다. 한데 언젠가부터 있는 자들이 그들에게 박탈감을 선물하는 날로 변질이 됐다.
이런 현상을 목도할 때마다 착잡함은 어쩔 수 없다. 기사에 의하면 재료 구매비가 더 올라 올해는 50만 원이 됐다고. 세계 3대 진미 중의 하나인 트뤼프(서양 송로버섯)가 그것이란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아침 요셉과 마리아는 무슨 식사를 했을까. 말 구유에 신생아를 뉘어 놓은 처지에. 이런 분을 기리는 날 최상의 부를 구가하는 디저트를 먹겠다고? 심지어 스크루지도 회개한 날 아닌가.
하긴 예수님 공생애 시절에도 그랬다. 헤롯 왕은 생일 파티 중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디저트(?)로 세례 요한의 목을 제공했다.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숨이 끊어지기 기다리며 유월절을 준비했다. 처형일이 금요일인 이유가 유월절 만찬을 맘 놓고 즐기기 위해서라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낸 악은 비난이라도 맘 놓고 할 수 있지만 오늘날 최상의 고급 식사를 즐기는 건 문화라고 지칭해 판단이 모호해진다.
몇 해째, 신세대의 SNS 즐기기엔 15만 원짜리 호텔 빙수 하나를 주문해 자기 것인양 각자 사진을 찍어 올린 뒤 나눠 먹으며 가성비가 높다고 자랑하는 것도 있다. 재화가 부족한 청춘의 비싼 문화 즐기기랄까. 이 50만 원짜리 케이크도 혹시 그렇게 소비되는 건 아닐지. 부자는 몇 퍼센트에 불과하고 너도나도 가난한 세상, 가성비 높은 경제 행위를 우습게 여길 수도 없다. 차라리 헐렁한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상술이나 지적해야 할까.
글로벌 부(富)가 자꾸 한 쪽으로 쏠리니 나머지들은 그저 있는 척만 한다. 부자와 빈자의 발생, 그 원인이 뭘까. 누구는 화성을 사러 간다 하고, 누구는 길거리 모퉁이에 몸을 뉜다. 하긴 예전 NBC 인기 앵커 브라이언 검보는 할아버지가 노숙인이라 했다. 연봉 몇억의 손자가 할아버지 거처를 마련해 드려도 부득이 거리로 되돌아간다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런 경우 개인의 선택이라 해야 할까.
적어도 뉴욕에서 가게 할 때의 손님, 배쓰 부부에게만은 가난이 선택은 아니었다. 부부가 국민 평균 교육 과정인 고교를 졸업했음에도 배쓰는 맥도날드에서 파트 타임을 했고 그 남편은 브루클린에서 두 시간 걸려 브롱스로 품 팔러 다녔다. 그는 더욱이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이면 다 부자라고 알던 내 상식(?)을 깬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민자, 우리 부부도 가게를 경영하는데 미국의 정규 교육을 받은 그들은 왜 일용직 노동자일까. 배쓰가 생주스 한 병 살 돈이 없어 아이에게 쿼터 달러 이미테이션 쥬스 먹이는 걸 볼 때마다 빈부의 발생이 정말 궁금했다. 네가 입은 티셔츠, 20불짜리지? 나는 5불짜리도 없어서 못 입어. 어느 날 캐쉬어 린다가 불쑥 말했을 때도 진짜 궁금했다. 그렇다고 내가 부자인 건 아니지만. 그녀도 고교 졸업했고 멋진 필기체를 구사하는 미국 출생 국민이었다. 미국민의 가난은 대체 어디서 오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능과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살기가 힘들어진다 한다. 법이 많아진 탓이라는 사람, 시스템의 복잡화로 사회가 구조적 복잡성을 가져와 빈부 격차가 늘어난다는 사람. 학자들이 진단하는 미국의 문제가 이거라면 한국도 이에 다르지 않다. 지금 가난하다면 앞으로도 가난하다고 가난한 청춘을 윽박지르는 분위기에 릴케의 시가 떠오르는 이유는 또 뭘까.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집을 짓지 못할 거외다. 가라앉은 음성으로 읊조리는 그의 가을 기도가 들려오는 듯한데 정말 그럴까. 나는 왜 아침부터 이런 문제에 매달리는 걸까. 진짜 도무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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