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안문자]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 


살아가면서 바람이 있다면 큰 걱정 없이 평화롭게 삶을 누리고 싶은 것일 터다. 하지만 바란다고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지난해 12월,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차가 크게 망가져서 탈 수 없을 정도다. 하필이면 해마다 개최하는 <안 패밀리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앞둔 바쁜 시기에. 불행 중 다행으로 나와 남편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콘서트 준비에 지장 없도록 하나님께서 큰 손으로 보호해주셨다고 믿으며 감사했다. 

콘서트는 성대하게 마쳤다. 비 오고 어두운 저녁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함께 기뻐하며 28회까지 힘겹게 이끌어 온 우리 형제들을 격려해 주었다. 음악회에 앞서 여행으로 지쳤고 차 사고와 큰 행사를 마친 후의 긴장감이 풀려선지 우리 부부는 무력감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성탄과 새해를 맞았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라고 푹 쉬었고 그 때 나는 감동적인 책 한 권을 읽었다. 

닥터 주인숙! 인숙이는 소아과 의사다. 우리는 초등 6학년부터 고등학교를 마치기까지, 그리고 한 교회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모두 의사고 7남 매 중 5남매가 의사요, 여 동생의 남편이 의사요, 목사가 있어 이른바 “사”자 집안의 장녀다.  

뜻밖에 지난 여름 끝자락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는데 그동안에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남동생이 시애틀에서 병원을 하고 있는데 4자매가 동생 집에 왔고 내일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게 되어 안문자를 만날 수 없어 서운하니 목소리라도 듣자며. 우리는 옛 시절로 돌아가 가슴에 남아있는 추억을 쏟아냈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긴 통화 속에는 재미있던 일, 아쉬웠던 일, 쓸쓸한 여운이 남는 이야기도 있었다.

인숙의 남편은 30년 전 59세의 아까운 나이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녀가 보내준 

추모집, <참인간, 참스승 최창윤>을 읽으며 이런 분이 세상에 있었다니. 한동안 가슴이 먹먹하고 울렁거렸다. 그녀의 남편은 정치학 박사다, 교수, 장군, 공보처 장관,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 총무처 장관,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역임 한 분으로 “착한 사람, 향기로운 삶의 소유자”라 불리었다. 인간적인 여유와 따뜻한 미소,  품위 있는 태도, 게다가 훤칠한 키에 미남이었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균형을 잃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무시하는 기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부하의 잘못을 자기가 책임지던 분, 육사출신, 서울대학교 대학원, 하와이에서 부인 주인숙과 유학하며 정치학 박사를 취득한 군인이지만 따듯한 군인이었다. 유학시절엔 황금 같은 주말을 사탕수수이민 1세들의 목회자 없는 교회에서 3년3개월 무보수로 설교 한 목회자이기도 했다.  

1980년대 말경 서슬 퍼런 민주화바람과 맞물리면서 혁명이라 할 정도로 무서운 기세가 확산할 때 전두환 대통령에게 발탁 된 후 최 박사는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정부까지 3대에 걸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는 위압적이지 않았고 청와대 쪽 시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는 한 점의 티도 남기지 않았다. 너무나 다른 세분의 대통령에게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그의 능력과 인품을 짐작할 수 있다. 스캔들 하나 남김없이, 권력의 남용도 없이, 오로지 나라사랑과 봉사의 사람으로 산 신앙인이었다. 청렴결백하고 사리사욕을 모르는 선비였다. 

추모의 글을 쓴 많은 분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최 박사는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사람. 청와대에서 일할 때 운전기사,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말로도 하대하는 법이 없었다, 먼저 인사하고 손 내밀어 악수를 신청했다고 한다. 간혹 그들에게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음을 알았을 때는 말없이 돕고 희로애락을 함께 한    사람. 높은 지위에 있어도 가장 말단직원이 상을 당하면 빠짐없이 조문을 간 사람이다. 거칠고 살벌한 정치판에서 이렇게 부드럽고 착한 사람이 어떻게 견뎌냈을까? 하나님은 권력의 세계 한가운데에 선량한 하나님의 사람인 최 박사를 세워놓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하신 것 아닐까. 그는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표출하지 않고 홀로 안고 삭였으니 몸속 깊은 곳에 스트레스로 쌓인 아픔이 결국 췌장암이란 무서운 병으로 나타났다.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췌장암을 품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며 기도원에서 조용히 마지막을 준비했다고 한다. 

친구는 말했다. “나에겐 과분 한 분이었어. 어려움 속에서도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이었지. 그는 진실한 인격자로 깊은 신앙생활의 힘으로 혼탁한 정치풍토에서 견뎌낸 거야.” 세 자녀는 각기 자신의 위치에서 빛나고 있다. 

이 고귀한 분을 사랑했던 나의 친구 주인숙! 6년 연애에 고작 28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이 떠난 자리에 모은 엄청난 조위금을 고스란히 장애 아동 특수학교인 밀알학교에 헌금했고 그 사랑은 <창윤 홀>이란 이름의 소강당으로 태어났다. 

최창윤 박사는 혼수상태에서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재림의 때를 준비하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을 말했다고, 하늘나라에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나는 가슴 먹먹함을 쓸어내리며 책을 덮었다. 창밖에는 비 그친 구름 사이로 내민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아, 아름답다. 누가 묻는다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혼탁한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다 가신 최창윤 박사 같은 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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