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수필-윤혜성] 겨울비의 끝, 새해에 드리는 응원

윤혜성(서북미문인협회 회원)

 

겨울비의 끝, 새해에 드리는 응원

창밖으로 나지막이 내리는 겨울비가 시애틀의 잿빛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누군가는 이 비를 지루하다 말할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대지를 적시는 소리 없는 연주처럼 들립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우리 마음속 빈 공간을 이 비가 조용히 채워주는 듯합니다. 고개를 들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상록수들. 짙은 초록 잎사귀마다 맺힌 빗방울이 보석처럼 빛나는 아침, 저는 이 아름다운 타향에서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시간'의 의미를 가만히 되짚어봅니다. 
우리가 이곳 시애틀에 뿌리를 내린 것은 어쩌면 저 늘 푸른 나무들을 닮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찬 바람이 불고 세상이 온통 무채색으로 변해도 결코 자신의 빛깔을 잃지 않는 나무들 말입니다. 그 강인함 뒤에는 척박한 땅속에서도 서로의 뿌리를 굳게 얽어매어 거센 풍랑을 견뎌내는 보이지 않는 연대가 있습니다. 
우리 동포들의 삶 또한 그랬습니다. 말도 서툴고 문화도 낯선 이 땅에서 우리가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 않았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의 손을 맞잡았던 따뜻한 온기 덕분이었습니다.
워싱턴주의 호수들은 참으로 깊고 고요합니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그 무수한 빗방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동그란 파문을 그리지만, 이내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하늘을 담아냅니다. 지난 한 해, 우리 마음에도 수많은 빗방울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삶의 눈물이었겠지요. 이제 그 모든 기억을 저 깊은 호수의 심연으로 가라앉히고, 새해에는 맑게 갠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를 태양의 미소를 맞이했으면 합니다.
새해라고 해서 거창한 변화를 꿈꾸기보다, 내 곁에 있는 작고 소중한 것들을 다시 사랑하기로 마음먹어 봅니다. 아침마다 코끝을 스치는 청량한 숲의 공기, 안개 자욱한 호숫가를 산책하며 나누는 다정한 대화, 그리고 멀리 고국을 향해 띄우는 그리움 섞인 안부 전화 한 통.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우리 삶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동포 여러분,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이 울창한 숲을 이루는 소중한 나무입니다. 때로는 흔들리고 잎이 젖을 때도 있겠지만, 당신이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그늘이 되고 안식처가 됩니다. 2026년 올 한 해, 여러분의 가슴 속에 시애틀의 숲처럼 늘 푸른 희망이 샘솟기를 소망합니다.
슬픔은 호수처럼 깊게 가라앉히고, 기쁨은 아침 햇살처럼 찬란하게 피어나는 날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비 개인 뒤의 맑은 하늘처럼, 여러분의 새해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눈부시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는 여전히 푸르고, 우리의 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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