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풍미' 원로배우 김지미, 미국서 85세 별세…"영화인장 논의 중"

지난 9일 지병으로 세상 떠나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미국에서 85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0일 영화배우협회에 따르면 김지미는 지난 9일(한국 시각) 미국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 절차 및 형식에 대해서는 현재 논의 중이다. 영화배우협회 관계자는 이날 "현재 영화인장을 하자고 이야기 중이지만 가족들과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고 전했다.

1940년생인 김지미는 1957년 '황혼열차'의 주연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듬해 '별아 내 가슴에'를 통해 인기를 얻었고 60, 70년대 최고 인기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김지미는 1980년대에도 활발히 활동하며 '비구니'(1984) '길소뜸'(1985) '티켓'(1986) 등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 출연, 탁월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1985년에는 '지미필름'을 창립해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2016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김지미는 그간 700여편이 넘는 영화에 나서며 한국 영화사를 상징하는 배우로 이름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비오는 날의 오후3시'(1959) '바보온달과 평강공주'(1961) '장희빈'(1961) '혈맥'(1963) '이수일과 심순애'(1965) '토지'(1974) 등이 있다.

 

김지미는 지난 1940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에서 자란 김지미는 고등학교를 휴학한 뒤 유학을 준비하다가 김기영 감독에게 발탁, 1957년 '황혼열차'로 영화계에 본격 데뷔했다. 김지미는 빼어난 미모와 독보적 분위기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대원군', '너의 이름은 여자', '옥합을 깨뜨릴 때', '잡초', '토지', '육체의 약속', '길소뜸', '티켓', '추억의 이름으로' 등 수백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60, 70년대 최고 배우로 활약한 김지미의 마지막 출연작은 1992년 작품인 '명자 아끼꼬 쏘냐'다.

또한 김지미는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 여러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기도 했다.

영화 제작에도 관심이 있던 김지미는 1980년대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하고 '길소뜸', '티켓'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은관문화훈장도 수훈했다.

김지미는 네 번의 결혼과 이혼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데뷔 후 1년 뒤인 1958년 영화감독 홍성기와 결혼했으나 이후 1962년 이혼했다. 이후 1963년 배우 최무룡과 재혼하고 슬하에 딸 한 명을 뒀지만, 결국 1969년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을 남기며 이혼했다.

그 후 1976년 김지미는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가수 나훈아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1976년부터 1982년까지 동거해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으나 결국 헤어졌다. 1991년에는 의사와 네 번째 결혼을 했지만 11년 뒤에 네 번째 이혼을 했다.

현업에서 물러난 뒤에는 미국 LA에 거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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