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언론 "공장 짓게 하고 비자도 안내줘…정책 모순" 일제 비판
- 25-09-09
유력지들 韓공장 급습 연일 조명…블룸버그 "트럼프 경제-이민정책 충돌"
WP "韓, 배신행위에 분노"…NBC "반도체공장 등 다른 첨단산업도 비슷한 우려"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한국인 근로자 대규모 구금 사태를 계기로 미국 주요 언론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모순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미국 땅에 공장을 지으라는 요구와 그 공장을 짓는 노동자를 체포하는 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스스로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이다.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급습 사건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전략에 담긴 주요 모순점을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수십억 달러 규모 공장을 가동하려면 수백에서 수천 명의 외국인 기술자가 필요하지만, 정작 이들을 합법적으로 데려올 비자 정책이 미비한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NBC방송도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과 이민 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했다고 보도하며 추후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다른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특히 이번 사건은 한미 정상이 만나 한국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약속을 재확인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이뤄져 외교적 파장이 크다. 미국이 관세 인하 대가로 투자를 유치해 놓고 정작 사업에 필수적인 인력을 범죄자 취급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에 대한 한국 내 분위기를 전하며 "배신 행위에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은 WP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그곳에 간 것이고 일단 산업이 구축돼야 미국인 고용을 위한 좋은 인프라가 구축될텐데, 우리가 본 건 한국인들이 수갑이 채워진 채 테러리스트나 깡패처럼 취급받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비단 한국과의 문제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루 여 선임연구원은 정치전문매체 더힐 인터뷰에서 "동맹국들이 혼란스러운 신호를 받고 있다"며 "한국 사례는 일본과 유럽연합(EU) 국가들까지 긴장하게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나라에 교훈을 주려고 일종의 충격 요법을 원했을 수는 있겠지만, 타이밍도 모양새도 끔찍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문제의 근원은 고질적인 미국의 비자 시스템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은 2012년부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지만, 호주나 싱가포르와 달리 전문직 비자(H-1B) 쿼터를 별도로 받지 못했다.
연간 발급량이 8만5000건으로 제한된 H-1B 비자는 쿼터를 확보하지 못한 국가의 경우 추첨을 통해 발급돼 불확실성이 크다. 이 때문에 일부 한국 기업들은 고용이 금지된 단기 상용비자(B-1)나 비자면제프로그램(ESTA)을 편법으로 활용해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트럼프 2기 출범 이후인 올 상반기 ESTA를 받고 미국에 갔다가 공항 등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사례는 106건에 달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3년 119건, 2024년 129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지난 6월에는 LG에너지솔루션 엔지니어들이 미시간 공장 생산라인 설치를 위해 시카고 공항에 도착했다가 무더기로 입국을 거부당했고, 5월에는 현대차 기술 인력도 애틀랜타 공항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다.
결국 이번 사태가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카토 연구소의 무역 전문가인 콜린 그래보는 "(이번 단속은)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투자 유형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대미 투자에) 냉각 또는 억제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유진투자증권의 류태환 애널리스트도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합법적으로 자격을 갖춘 숙련된 인력의 부족 현상을 악화하고 인건비 부담을 가중해 미국 주요 건설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사업 지연과 비용 증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미국이 사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긴 힘들다고 보고 있다.
싱가포르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의 류용욱 조교수는 타임지 인터뷰에서 "미국 제조업을 육성하라면서 동시에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한국 기업을 단속하는 건 말이 안 되며 미국의 이익을 해치는 일이기도 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앤드루 여 연구원도 "미국의 비자 시스템은 한국 기업들에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미국을 사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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