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의사 없어 환자 거절 정당한 진료거부 아냐"…의료계 '부글'
- 24-11-26
"배후진료 되지 않는데 무작정 받으라고?" 강력 반발
복지부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 의료개혁으로 보완"
지난해 3월 대구에서 발생한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건'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이 소송에서도 진 일이 알려지자, 의료계에서는 "필수의료는 무너졌다. 무조건 환자만 살려놓으라는 말이냐"는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26일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강재원)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을 운영 중인 학교법인 선목학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지난해 3월 19일 대구에서 만 17세 A 양이 4층 건물 높이에서 떨어져 머리와 다리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119 구급대는 대구파티마병원, 경북대병원을 거쳐 대구가톨릭대병원에 환자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측은 "신경외과는 전혀 안 된다. 의료진이 없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했었다. 수개월간 조사 끝에 복지부는 "환자에게 어떤 진료가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에 응급의료를 거부했다"며 병원에 시정명령과 6개월 치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병원은 "당시 신경외과 전문의가 모두 부재중이라는 점을 알렸으며 진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을 추천했다"며 "응급의료를 거부 또는 기피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사건을 심리한 법원은 병원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병원 응급실에 일단 환자를 받아들이는 게 가능했으므로, 단순히 신경외과 전문의가 부재중이라는 사정은 처음부터 수용 자체를 거절한 데 대한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할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와 관련해, 의료계는 당시 병원에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 환자를 받기 어려웠고 이 점을 그대로 설명한 게 어떻게 '진료 거부'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10개월째 접어든 의정갈등과 국민적 우려로 커진 '필수의료 붕괴'가 더 심해지리란 전망도 제기된다.
의료계는 또 "응급실이 일차적 검사나 응급처치만 할 수 있을 뿐, 배후 진료과의 수술·입원 등 최종 치료가 어려우면 환자 수용이 어렵다. 소송에 휘말리지 않게 소극적으로 진료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최종 치료가 되든 말든 환자를 받으라는 얘기가 된다. 응급의학과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어 보여 우려된다"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지난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정말 응급실로 돌아가면 안 되겠다. 최종 치료가 불가능한데 환자를 어떻게 받으라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심장만 뛰게 하면 되는 건가. 인공호흡기를 달아 놓고 그래도 살려 놨으니, 소임은 다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면 되는 건가"라며 "국민들이 원하는 의료가 이런가, 교수들께서 원하는 의료도 그런가. 그냥 안 하겠다"고 언급했다.
최근 의정갈등 장기화 상황 속에 '응급실 뺑뺑이'의 해결 방안은 무조건적인 환자 수용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 역량을 확보한 병원에 적기 이송돼야 한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지난 9월 '응급의료법상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마련했다.
지침에 따르면 '응급의료기관 인력, 시설, 장비 등 응급 의료 자원의 가용 현황에 비춰 응급 환자에게 적절한 응급 의료를 할 수 없는 경우'는 진료 거부·기피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
이를 근거로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연세대학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번 사례 등이 알려진 뒤에야 지침이 나왔다"며 "현재는 응급의료의 정당한 거부 사유에 해당할 수 있겠다"고 진단했다.
이경원 교수는 "병원의 행정소송 역시, 보조금 중단 등 행정 처분에 대한 적법성을 다투니 병원이 패소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행정 소송에서 원고 승소, 정부 패소 판결은 극히 어렵고 드물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복지부는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응급의료 전달체계 개편'과 병행해 의료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필수진료과 의료진의 법적 부담을 경감할 의료사고 안전망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응급환자 이송부터 진료까지의 제공 체계가 분절된 사례로서 조사까지 마무리된 건"이라며 "앞으로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 의료개혁을 추진하며, 응급의료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 기준도 명확히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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