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아닌 경험자…'김진주' 세 글자로 다시 서다
- 24-03-01
"많은 피해자들에게 작은 용기의 단초가 되길 바랄 뿐"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출간
20년 시한부 인생을 사는 20대 여성이 있다. 그녀의 수명을 좌우하는 건 습관도, 지병도 아닌 '가해자'이다. 가해자는 여느 날과 같았던 그날, 늘 걷던 그 길, 익숙한 그 곳에서 느닷없이 나타났다.
그렇게 김진주 씨(가명)는 2022년 5월 22일 새벽 귀갓길 부산진구 서면 한 오피스텔 1층 복도에서 전과 18범 이현우에 의해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가 됐다. 가해자는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20년을 확정받았고, 반성은 없었다.
그로부터 648일 뒤 진주 씨는 피해자가 아닌 작가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지난 28일 발간된 저서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에는 그가 겪은 범죄 피해 경험담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범죄피해자가 될 줄' 몰랐던 진주 씨가 사건 직후 느낀 당혹감부터 누구나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만큼 '내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라는 깨달음, 진실규명을 위해 생업을 제쳐두고 재판에 뛰어들어 '피해자가 바꾼 죄명'을 재판부에서 인정받기 까지. 그 과정에서 진주 씨는 범죄 피해 경험자로서 부여받은 사명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자들을 대신하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했고, 두려움의 대상이던 가해자에게 '보복 편지 말고 회복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됐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그래도 강간살인미수 피해자 중 저만큼 운 좋게 잘 회복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하는 거예요. 죽어서, 아파서 말도 못하고 잊힌 수많은 범죄에 대해 누군가는 알려야죠."
지난해 10월 출판 제의를 받고 펜을 잡은 뒤 단 2주만에 써내려간 책 분량은 320페이지에 달한다.
이 책을 두고 도준우 '그것이 알고 싶다' PD는 범죄 피해자를 위한 친절한 생존 안내서, 이탄희 국회의원은 기록서 또는 증언서라고 소개했다. 진주 씨는 그저 이 책이 수많은 진주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려줄 '손길'이길 소망했다.
"피해자들이 말을 안 해서 모른대요. 미약한 지원 제도,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고는 생각 못하죠. 손길을 뻗는 것조차 주저하는 많은 피해자들에게 작은 용기의 단초가 되길 바랄 뿐이에요."
◇ "피해자다움? 사회적 편견 깨고 싶어"
두려움을 용기의 자양분으로 삼은 진주 씨도 스스로 전면에 나서 범죄 피해를 알리기까지 쉬운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수사 초기부터 재판까지 모든 과정에서 제3자로 밀려난 피해자 진주 씨는 법정에서 처음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리를 폭행당해 해리성기억상실(뇌의 이상 없이 심리적 원인에서 발생하는 기억상실)로 사건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진주 씨에게 CCTV 화면에서 사라진 7분은 의문 그 자체였다. 진주 씨는 그렇게 7분의 행적을 밝히기 위한 지난한 싸움에 뛰어들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12년 뒤 저는 죽습니다'라는 호소글을 올려 사건을 알렸고 방송에 출연해 공론화했다. 1600쪽에 이르는 수사 기록을 요약해 정리하며 계속해서 의견서, 탄원서 등을 작성했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의 혐의는 살인미수에서 강간살인미수로 바뀌었고, 형은 12년에서 20년으로 늘었다.
"사실 저는 한 번도 가해자랑 싸운 적이 없어요. 언론, 사람들의 시선, 판사나 가해자 측의 변호사들이랑 싸웠죠. 가해자가 출소하면 죽는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날 전혀 몰랐을 때도 죽이려던 사람이 날 알고 있는데 가만둘까요? 제 수명이 12년에서 20년으로 8년 는 것뿐이죠."
진주 씨는 사회적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다양한 범죄, 수법, 이유들로 인해 피해자가 된 사람들에게 똑같은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전형적인 피해자로 보이지 않게 반항했다고.
"화려한 네일아트하고 원피스를 입고 한껏 꾸민 채 재판 방청을 가기도 하고, 공론화하기 위해 일주일에 수십번 언론사를 직접 찾아다니고 국정감사 현장에 나가 목소리도 냈죠. 저의 이러한 모습도 다른 피해자들에게 강요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범죄 피해를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 중 1명에 불과하니까요."
◇ 미흡했던 초동 수사, 반복 안돼…"변화 이끌어내야"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피해자인 진주 씨뿐만 아니라 재판부도 초동 수사에 대한 아쉬움을 지우지 못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수사 단계에서나 1심에서 좀더 적극적인 수사나 증거 신청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왜 그랬대?' 묻는 말이 가장 힘들더라고요. 저보다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요? 왜 그랬을까, 왜 나였을까?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범죄 피해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중에 해리 증상은 정말 흔한데 왜 해리성기억상실을 겪는 피해자를 다루는 매뉴얼이 없나, 매번 비난만 하고 끝나니 변화가 없구나 깨달았죠"
진주 씨는 단순히 '억울한 경험'에 멈추지 않고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다시금 싸움을 시작했다. 부실 수사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3월 중 모금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진주 씨의 목표는 위자료가 아닌 '조사 매뉴얼 개정'이다.
변화를 위한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진주 씨는 범죄 피해자 온라인 교육 플랫폼 '매너스(Manners)'와 범죄 피해자 인식 제고 브랜드 '돈애스크(Don't Ask)'를 구상하고 있다. 현재 상표 출원을 마치고 창업 지원 사업에 계획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벌을 주고받는 문제를 떠나 좀 더 본질적으로 피해자든, 가해자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해야 해요. 결국 범죄 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통해 범죄 피해자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최종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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