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시장 사후 '미투'…진상조사로 이어질지 주목
우회로 있으나 피고소인 부재로 어렵다는 의견도
고(故) 박원순 서울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던 여성이 사실상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에 가까운 입장을 내놓으면서 '박 시장 성추행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수사기관이 안 된다면 국회가 진상 조사를 하거나 서울시가 감찰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성추행 의혹 진상 조사의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라면서도 현실화하기 어려운 요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박 시장 고소 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는 수사받던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인권위 진정이나 서울시 자체 감찰 등 우회 방법을 통해 의혹 일부를 규명하는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기 힘들다.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은 앞서 12일 박 시장 등의 인권침해 행위를 조사해달라는 진정을 인권위에 제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는 진정이 제기될 당시 그 원인이 된 사실에 관해 수사기관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면 진정이 각하된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 내용과 진정 접수 내용이랑 겹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인권위 차원의 자체 조사를 할 수 있는 길은 있는 셈이다.
인권위 관계자도 "비슷한 내용이 수사기관에서 진행된다고 무조건 각하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진정 접수 내용이랑 겹치지 않을 수도 있어 각하 여부는 조사를 진행해봐야 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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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서울시장 발인이 엄수된 13일 오후 경남 창녕군 박원순 시장 고향마을 생가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정사진을 든 유족이 장지로 향하고 있다. 2020.7.13/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
서울시 관계자들을 방조 혐의로 고발한 사건도 있다.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은 지난 10일 서정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비롯한 시청 관계자들을 강제추행 방조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박 시장 고소 건이 '종결'되더라도 시청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추행 혐의가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서울지방청의 해당 고발 수사 가능성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주범 혐의에 대한 수사결론 없이 관계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국회가 진상조사단을 꾸려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가장 적법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경우 야당 뿐 아니라 과반 이상의 180석을 점한 여당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권에서는 박 시장을 추모하는 분위기지만 "그의 업적과 별개로 성추행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지난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이 고(故) 장자연씨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을 직접 지목한 뒤 수사기관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라고 지시한 것을 거론하며 박 시장 사후(死後)에도 진상 규명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김 전 차관과 장씨 사건의 경우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들이 사망하지는 않았다. 공소시효도 만료가 되지 않은 부분도 있어 조사 후 결국 '기소'가 이뤄질 수 있다.
박 시장 사건의 경우 피해자 주장만 남았다. 박 시장의 부재로 진상 조사가 어려운 데다 김 전 차관 사건과 달리 의혹 당사자를 법정에 세워 재판으로 진실을 확인하는 과정을 할 수 없게 됐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쌍방간 다툼의 여지가 많은 게 성범죄 사건의 특징인데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죽은 상황에서 진상조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제출하는 자료만 보고 판단할 수도 없는데 진상이 제대로 조사가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가 될 텐데 진상조사를 위한 수사라는 게 법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회의적인 의견을 내놨다.
박 시장 고소인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과 서울시, 정부, 정당, 국회가 모두 책임 있는 계획을 밝혀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