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친작여부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로 못봐"
가수 조영남씨가 대작(代作)인 사실을 알리지 않고 다른사람에게 그림을 판매한 것은 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최종결론이 나왔다.
작품제작에 제3자가 관여한 사실을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은채 판매한 것이 사기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조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 송모씨에게 1점당 10만원을 주고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자신이 추상적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이를 송씨에게 그려오라고 한 뒤 약간 덧칠을 하고 자신의 서명을 넣어 17명에게 그림 21점을 팔아 1억8000여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조씨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부분의 작업을 다른 작가가 완성하고 마무리에만 일부 관여한 작품을 온전히 자신의 창작물로 볼 수 없으며 구매자들에게 창작표현 작업이 타인에 의해 이뤄진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2심은 1심의 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작화가 송씨는 조씨 고유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보조일뿐이며 조씨가 직접 그렸는지 여부는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고지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라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또 조씨가 작품을 직접 그렸다는 친작(親作) 여부가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지난 5월28일 열린 공개변론에서 검찰 측은 구매자들이 조씨의 그림을 고액을 주고 구매한 이유는 유명 연예인 조씨가 직접 그렸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라며 대작화가가 그렸다는 사실을 숨기고 판매한 조씨의 행위는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씨 측은 대작화가는 조씨의 지시를 받아 작업을 했을뿐 저작자라 볼수 없으며 조씨를 단독 저작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우선 검사가 조씨를 저작권법 위반죄로 기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고심에서 이를 주장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사는 조씨를 사기죄로 기소했을 뿐 저작권법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았고, 공소사실에서 누가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저작자라는 것인지 표시하지 않았다"며 "검사가 상고심에서 조씨의 저작권법 위반 여부를 주장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불고불리원칙(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법원이 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반한다"며 검사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그 작품이 친작인지 혹은 보조자를 사용해 제작됐는지 여부가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씨의 작품을 구매한 사람들은 해당 미술작품이 ‘조영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상황에서 이를 구입한 것이었고, 달리 미술작품에 대해 위작이나 저작권 시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며 "따라서 구매자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을 조씨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2심의 판단은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미술작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하였는데 이를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판매하였다면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판단한 최초 사례"라며 "위작⋅저작권 다툼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관하여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판시했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