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눈 물과 눈물
가고 싶은 곳, 갔다.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났다. 그런 일상이 참으로 복된 나날이었다.
뉴욕 타임스에 유명 칼럼니스트가
말한 BC(Before Coronavirus)와 AC(After
Coronavirus)를 빌지 않더라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뒤, 세상이 무쌍하게 변했다. 겁 없이 살아온 지난날을 되짚어 볼 시기가 온 것일까. 삶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새새틈틈 분주하다.
코로나 재앙에 대처해 하루가 다르게
신(新)기술이 등장한다. 각종
정보기술 기기를 최대한 활용하느라 너도나도 용쓴다. 바뀌어 가는 세상에 편승하기 힘겨워서일까, 아니면 그 성장통일까. 우왕좌왕 예서 제서 탄식 소리가 불거진다. 자연의 끙끙 앓는 소리가 눈에 밟힌다.
한 치 앞을 모를 지경이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디 누꿈하기나 했던가. 아,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몰큰
뒤덮었다. 아름다운 미서부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주가 엄청난 산불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6,000피트나 되는
자우룩한 산불 연기에 천하가 숨막힌다. 뿌연 세상이 되었다.
요즘에는 ‘우아’처럼 기쁜 일에 내는 감탄사보다 ‘앗, 어’라는 외마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영화에서 가끔 듣는 오 마이 갓 정도는 그나마 여유로운 말이다. 우리가 살면서 과연 몇 번이나 탄식 소리를 낼까. 느긋한 나도 그런
적이 있었을까.
‘어어!’
9/11, 쌍둥이 빌딩이 순식간에 무너질 때 내가 냈던 소리다.
나는 그날 이틀 전인 9월 9일, 만하탄 세계무역센터 110층짜리 그 빌딩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뒷날인 9월 10일, 뉴왁 공항에서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바로 하루 뒤, 뉴왁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하이재킹 당했으니, 나의 충격은 남달랐다. 빌딩이
붕괴되는 모습을 본 전 세계인들도 가위 경악했다. 내 사진 속 그 높은 두 개의 빌딩은 이틀 만에 영원히 사라졌다. 허허롭다.
시애틀에서 용케 만난 내 갑장 친구, 외유내강 성품의 그가 참 좋다. 그 친구가 요즘 꿈 속에 있다. ‘이건 정녕 꿈이다’라고 그가 말했다. 다 큰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코로나 사태로 정작 필요한 진료가
배제되었던 것을 가슴 아파했다. 아, 그의 말끝에 매달린
장탄식 소리가 내 귓가에서 대롱거린다.
때가 때이니만큼 성당에 가는 대신, 나는 동영상 미사에 참례한다. 지난 8월 30일 미사의 복음 말씀 중,
내 귀에 꽂히는 어휘가 등장했다. ‘맙소사’였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보거나 당할 때 탄식조로 내는 소리다.
맙소사, 내가 한 번도 쓰지 않던 말이었기에 영어로 된 성경을 살펴보았다. 단순히
탄식하는 감탄사가 아니었다. 그
행간의 속내는 ‘마옵소서’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을 절대자에게 간곡히 여쭙는 느낌이다. 어려운
코로나 사태인 지금, 그분께 우리가 청원해 볼 만한 것 같다.
얼마 전, 한국과 중국에서 엄청 쏟아진 집중호우 피해가 막대했다. 최근 허리케인 샐리와 베타가 미남동부 여러 도시를 강타했다. 빙하
유실이 대홍수는 물론, 육지를 서서히 물에 잠기게 한다. 심각한
일이다. 장기간 쏟아진 폭우나 1분에 100만 톤씩 녹아내린다는 그린란드의 빙하, 모두 자연이 흘리는 눈물일는지도
모른다. 그 눈 녹는 물이 인간의 눈물이 될까 보아 염려스럽다.
태풍, 홍수 못지않은 두려운 재해가 산불이다. 이상고온 현상이 문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사흘 동안 마른번개가 만 번 이상 발생했다. 폭염 속에 대형 산불로 서울 넓이의 16배를 태웠다. 지지난 주, LA의 기온이 섭씨 49.4도를
기록했다. 한 달여 전인 8월 16일, 데스밸리 국립공원은 섭씨 54.4도였다. 세계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했다. 땅덩이가 점점 뜨거워진다.
워싱턴주 산불더미 피해도 심각하다. 산불비상사태가 선포될 정도다. 연기가 창문마저 닫아 버렸다. 잔뜩 흐린 시애틀 겨울 날씨에도 갑갑한 적 없었건만, 갈수록 태산이라
했던가. 뭉뭉하다. 시애틀 하늘에 무겁게 드러누운 산불 연기만큼이나
지구촌의 미래가 부옇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힘은 나약하기
짝이 없다. 내일 일어날 일을 모르는 게 우리다. 나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달라고만 하지 않았을까. 내 맘대로 자연을 사용, 훼손하고 맑은 공기 주십사 하는 셈이다. 누구보다 자연을 즐기는 나로서는 짚어볼 일이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 변화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며,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행을 촉구했다.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로 갈팡질팡할 때에 희망을 주는 메시지다. 지구 기온이 0.01도라 할지라도 더 올라가지 않도록 안간힘이 필요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