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소망이
필요합니다
나치 독일의 처참한 유대인 수용소에 대한 관찰기록을 중심으로 쓴 프랭클 박사의 저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은 매우 권위 있는 책입니다. 그는
수용소에 있는 인간상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습니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곧 쇠약해졌다. 소망을
끝까지 가진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았다. 혼자서 소망을 이룰 뿐만 아니라 절망 속에 있는 이웃들을 도와주고 소망을 계속 갖도록 격려하던
사람은 몸도 마음도 가장 건강한 상태에 있었다”고 말입니다.
제대로 된 소망은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도 살리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소망이
삶을 살리는 구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이처럼 구원을 만들어 내는 소망입니다.
한국 아이들과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극명한 차이점 하나는 어려서부터 강력한 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청소년 사역에 올인해왔던 필자는 습관처럼 청소년들을 만나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장래
꿈이 무엇이냐?”입니다.
한국에서는
90%이상이
꿈을 가지고 있고 또한 그것을 고백하는데 비해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정 반대로 10%정도만
가슴에 새겨 둔 꿈이 있고 나머지는 어깨만 으쓱하고 꿈을 말하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각오가 세워져 있지 않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강력한
꿈이 있어도 그 꿈이 이루어질까 말까한데 꿈조차 없으니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비싼 등록금을 내며 4년이나
대학에서 공부한 청년들이 아버지 그로서리나 세탁소를 이어받아 장사를 하는 경우가 나옵니다. 그러한 사업을
이어받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만큼 전공을 살려 미국 주류사회를 정복해 나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야곱 아들 요셉이라는 소년은 17살의
꿈 많은 소년 시절에 배다른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이라는 타국으로 팔려가 보디발이라는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보디발 아내가 그를 유혹하다 안되니 거짓으로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고발해 감옥살이를 하는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보여주셨던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13년이란
기나긴 고통의 세월이 지났을 때 그는 마침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고 바로의 2인자로
우뚝 서서 고향에서 아버지와 온 가족들 70여명을 이주시켜 훗날 출애굽하는 대민족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절망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소중한 마음까지 무너져 문자 그대로 절망의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사태가 완전히 끝난다 해도 30% 이상의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제임스 와트라는 사람이 그린 ‘소망’이란 명화가 있습니다. 지구가 있는데 그 지구 위에 남루하게 옷을 입은 어떤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가 거기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바이올린 줄을 가만히 보면 그 줄들이 가닥가닥 끊겨 있습니다.
오직
하나의 줄만 남아 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바이올린 줄을 가지고 열심히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 남은 줄을
가지고 소녀는 열심히 바이올린을 켜는데 그것이 바로 소망이라는 명화입니다.
인맥의 줄이 끊어지고 금맥의 줄이 끊어지고 세상 줄과 믿었던 사람과의 관계도 끊어져 배신당하고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과 내가 교통할 수 있는 한 가닥 줄만 있으면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방이 캄캄하게 막힌 암담한 상태에 처해 있었을 때에도 예루살렘을 향한 동쪽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을 건져 주셨고 땅에서도 높여 주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