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식(민주평통 자문위원)
화를 참는 Tip
우리는 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분출하는 약한 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또한 오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화를 내고 나서 후회가 막심하고 또 관계가 악화되고 나서는 회복되기가 어려움을, 살면서 늘 경험하곤 합니다만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도 참지 못하느냐.”물론
졸음을 이기지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지만 새겨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가
예순이 지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이제 산전수전을 다 겪었으므로 어지간한 일에는 계집애처럼 질질 짜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믿음의 속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처음 내 인생이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변화란 A에서 A’로 변화하는 정도가 아니라 A에서 B로 변하는 수준이 되어야 화를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사과에서 좋은 사과가 아니라 사과에서 배가 되어야 육체의 소욕인 분노를 이길 수 있고 성내지 아니하는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봅니다.
분노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어프로치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분노를 이기는 일은 부수적인 문제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부수적인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봅니다.
가인의 분노는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인류의 오래된 죄악인 바. 성내지 않기 위해서는 사탄이 주는 조급함을 늘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화를 참기 위해서는 사급취완(捨急取緩)이란 사자성어에 있는 대로 급한 것은 버리고 느린 것을 취하라는 말처럼 한 템포 물러서는 지혜가 필요할 듯합니다.
온유한 무엇보다도 분노하지 않는 사람의 성품인 것 같습니다. 온유는 선착장의 타이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선착장에 붙어있는 타이어와 배에 붙어 있는 타이어가 서로 부딪혀도 충돌을 완화시켜 주는 것처럼 분노를 이기기 위해서는 세상을 솜처럼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또한 요긴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이지 못함은 도착시키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분노의 원인입니다.
말 속에 지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착하다는 것은 ‘도착시키다’의 약자입니다. 착하다는 것은 거부하거나 반발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예만 있는 것입니다. 착한 것은 순종하는 것을 또한 의미합니다.
착한 것은 ‘도착시키다’ 혹은 ‘받아들이다’ ‘수용하다’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착한 것은 선한 것이고 착하지 않은 것은 악한 것입니다. 선악의 기준이 바로 도착시키느냐 도착시키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도착해야 분노를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자는 바로 착한 자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