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이기라!
김상진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가운데 “고향이 좋아”라는 곡이 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향수를 달래려고 술에 취해 하는 말이야 아, 타향 싫어 고향이 좋아.”라는 것이 그 가사다. 백 번 옳은 말이다. 누가 타향을 고향처럼 좋아하겠는가?
또 이런 말도 있다. “올림픽 정신은 참가하는 데 있다.”고. 이것도 거짓말이다.
전 세계에서 올림픽에 참가하려고 비지땀을 흘리며 4년을 준비하는데 그런 선수들이 “참가 하는 데 의미를 두기 위해” 그렇게 돈과 시간과 열정을 쏟을까? 그들의 목표는 누가 뭐래도 금메달이다.
이렇듯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거짓없는 소원은 평안이다. 이것이 무너졌을 때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온통 말세를 만난 듯 난리도 아니다. 직장에도 나가지 못한 채 재택근무를 해야 하고 스몰 비즈니스는 아예 문을 닫았다. 실직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급기야는 외출조차도 할 수 없는 'Stay at home'이라는 초유의 행정명령이 떨어진 상태니 더 무슨 말을 필요로 하겠는가?
이러한 때에 인류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고 십자가에서 거룩하게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선포해 주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말이다.
예수님은 이렇게도 우리 인생들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면서 “환난”을 당할 것을 미리 아시고 담대하게 이겨나가도록 촉구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말씀으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악한 세상의 환난을 온 몸으로 다 겪으시고 이겨내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그 무서운 환난을 이겨낼 수가 있었을까?
이렇게도 힘들고 어려운 때에 예수님께서 환난을 극복하시고 이겼노라고 선포하신 배경을 살펴보면서 우리들의 삶에 적용해 본다면 유익한 역사가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극한의 환난을 극복하시고 이기신 능력은 바로 절대적인 사랑이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로마 병정들에게 붙어서 칼과 몸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예수님은 그를 여전히 “친구”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칼을 들고 그들 앞을 가로 막은 베드로를 오히려 책망하셨다. 그리고 자신을 잔인하게 짐승과 같이 십자가에 못을 박아 매달고 옷을 벗겨 제비뽑으며 희롱하는 비이성적인 악당들을 향하여 십자가의 그 모진 고통가운데서도 용서의 기도를 해주셨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고 말이다.
이 모두가 사랑이었다. 예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당장에 그 잔인한 이들을 몰살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이시기에 권세로 굴복시키지 않으시고 오직 사랑으로 굴복시켰다.
이는 이솝 이야기 ‘태양과 바람’에서도 나오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태양과 바람이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자는 내기를 하였다. 바람이 있는 힘을 다해 거세게 불어 나그네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나그네는 바람이 세게 불면 불수록 더욱 옷깃을 여미고 단속을 하니 도저히 옷을 벗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태양은 조용히 뜨거운 열을 내려 보냈다. 그러자 나그네는 너무 덥다면서 스스로 옷을 벗었다.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감동을 받았을 때 행동한다. 이렇게도 힘들고 어려운 때에 의외로 눈물 나도록 감동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카페를 운영하는 집사님과 통화를 하면서 가슴이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받았다. 커피 두 잔을 시키고 100불을 팁으로 놓고 가면서 “얼마나 힘이 드느냐. 이 시기를 잘 넘기기를 바란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작은 것이라도 마음이 담긴 선물은 우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텍사스에서는 한 부부가 90여불 어치의 식사를 하고 9,700불의 팁을 주고 갔다고 CNN이 보도했다.
밤이 깊어 어두울수록 작은 반딧불도 빛이 난다. 따뜻한 마음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고 말 한 마디라도 위로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통 세상이 혼란스러운데 우리는 조용히 사랑의 바이러스를 퍼트려야 하겠다.
가게 월세를 받지 않겠다는 선한 주인도 있고 마스크 하나라도 나누는 온정이 많아 힘들지만 가슴이 훈훈함을 느낀다. 이 땅에 사랑이 있는 한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이 세상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너무 나도 이 땅에 사랑이 메말라가기에 하나님께서 이렇듯 사랑의 소중함으로 멀어졌던 이웃들과 하나가 되라고 시련을 주시는 것은 아닐는지 마른 가슴을 쓸어내리며 회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