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고문)
기억의
무게
자다
말고 갈증이 일었다. 아무래도 쌈밥의 양념장이 짰나 보다. 때마침
물 한 병도 갖다 놓지 않았다. 살그머니 일어나 부엌으로 내려갔다.
전등불을
켜자 어둠이 소스라치며 손사래를 친다. 눈부시긴 나도 마찬가지다. 후딱
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갈증은 가셨는데 대신 잠이 달아났다. 문득 맨 살의 발바닥에 닿는 마루의 촉감이
느껴진다. 아, 발 시려.
이 차가운 감촉, 퍽 오랜만이다.
금방
잠들기는 틀린 일이어서 잠시 식탁에 앉았다. 발바닥을 마루에서 들었다 놓았다 찬 기운을 느껴본다. 문득 기억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학생 수가 6천여
명에 달하는 워낙 큰 학교였다. 나는 제일 끝 반, 16반이었다. 본교사의 교실이 모자라서 가교사가 두 군데나 있었는데 우리 반은 거기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본교의 운동장 한
구석에 있는 창고를 교실로 사용했다. 좋은 건 쉬는 시간이면 가장 빨리 놀 수 있고 가장 늦게까지 놀
수 있었다.
워낙
외풍이 심했다. 겨울이 되자 도서관의 한 구석을 빌어서 이사를 했다.
칸막이도 없었다. 도서관 이전엔 강당이었다. 반들반들, 마룻바닥은 매끄러운 얼음판 같았다. 휑한 공간에서 맞는 찬기 또한
교실과 엇비슷했지만 우리는 별다른 대우를 받은 양 우쭐댔다.
문제는 마룻바닥이어서 신을 벗어야 했다. 당시 나일론양말은 질기기는 했지만 온기가 없었다. 두 겹을 껴 신어도
발이 시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빈곤이 도처에 깔린 시대였다. 뒤꿈치와
바닥을 꿰매서 신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속에는 꿰맨 양말을,
겉에는 성한 양말을 신었는데 그나마도 발가락을 오므리고 발을 들고 앉았다.
그날
수업 도중에 드르륵 문이 열렸다. 잔망스런 눈들이 일제히 문을 향했다.
반 아이 하나가 책가방도 없이 들어섰다. 평소에도 초라하고 힘없어 보이는 아이였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쭈뼛쭈뼛 들어서는 아이에게서 제일 먼저 내
눈에 띈 건 맨발이었다. 추레한 바지 밑으로 드러난 작고 앙상한 맨발.
그 발이 왜 그리 희게 보였을까.
아이는
수줍게, 그리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젯밤에 집에 불이 났다고. 그러고 보니 간밤에 소방차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아이의 집은
산중턱에 있었다. 우리 집에서 한참을 올라가면 동네 끝에 아리랑고개가 있었고 그 너머에 동네를 에워싼
듯 꽤나 높은 구봉산이 있었다. 잡풀뿐 민둥산이었다. 산 중턱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아이의 집은 숲 속에 있었다. 동네에서는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무허가 천막집이었을 게다. 전기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촛불을 켜놓고 동생과 함께 늦게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그만 촛불이 넘어져 이불에 붙으면서
불이 났다고 했다.
이튿날, 선생님이 걷은 위로금이라야 백 환짜리 동전이 대부분이었다. 그 속에
담은 지폐 한 장에 그렇게 내 마음이 뿌듯할 수 없었다. 전날 밤, 엄마에게
말했다. 아이의 발이 맨발이었다고. 정말이지 그 얼음 같은
마룻바닥을 견딜 수 있는 양말 한 켤레를 꼭 사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그때처럼 절실한 때가 또 있었을까.
뜬금없는
기억이다. 오죽하랴. 아이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당시 초원의 집쯤으로 상상해서일까. 동네에서 바라보던 아이의
집 위치가 눈에 선한 걸 보면. 그 뒤에도 몇 번 마룻바닥의 교실을 만나곤 했지만 그때만큼 찬 기억은
없다. 오늘밤, 마룻바닥에서 만난 찬 기운이 불러낸 옛 기억은
내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가끔씩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내 스스로도 신기하다. 그런데 기억 속엔 대개 후회되거나 부끄러운 일들이 많아서 차라리 기억나지 않았으면 싶은 게 더 많다.
중학교 다닐 때 집안일을 거드는 아이가 있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도
다닌 둥 만 둥 해서 영어 공부하는 날 부러워했다. 서너 번 영어를 가르쳐주었지만 공부는 신통찮았다.
이후, 내 공부하기에만도 바쁘다며 모른 척했다. 그런데 가끔씩 그 아이가 생각난다. 한 번 만 더, 좀 더 다정하게 가르쳐 줄 걸. 이웃사랑이니 봉사니 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나는 건 자라지 못한 내 인성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닐까.
기억이란
귀 기울여 듣고 붙잡으려는 사건만이 인식의 창고에 저장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또한 기억이란 무엇이든
저마다의 무게가 있는 게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이처럼 터무니없는 일에서 그토록 선명한 기억들이 되살아날까.
그러고 보면 이런 뜬금없는 기억들이라는 게 오늘을 살아야 하는 삶의 자세를 이르려는 게 아닐까. 어제도 오늘도 별다를 리 없는 삶이지만 내 기억 속에서 부끄럽지 않을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