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고문)
힘
빼요
“어깨
힘 빼시고.”
엎드려
누운 등 뒤에서 의사가 지그시 어깨를 누르며 날 으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팔을 뒤로 뻗으세요.”
의사가
누르는 힘에 저항이라도 하듯 어깨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정말이지 귀신 같이 짚어내는 그의 손끝에서
통증이 절정이다. 아픔을 참는 것도 젊었을 때 일인지 절로 끙끙, 앓는
소리가 난다. 떨어지는 면역력이 참을성까지 떨어뜨리는 모양이다. 과연
어깨의 힘을 조끔 빼자 이게 웬 일, 한결 팔의 움직임이 편하다. 이봐라
는 듯 의사가 씩 웃는다.
그동안
얼마나 어깨에 힘을 실었으면 이렇게 굳어 있을까. 세월의 더께치고는 굳은살이 두텁다. 볼이 처지고 젖가슴이 내려앉고 아랫배가 처지고, 내 몸 부위에 처지지
않는 게 없는데 유독 어깨에만 굳은살이 박였을까. 언감생심, 사람
꼴이라도 갖추려는 지킴이 역이었을까. 이방인으로서 주눅 들지 않으려는 자존심에 치켜세울 게 어깨 뿐이었나
보다.
떡
벌어진 어깨로 턱없이 위세를 떠는 이들이 있다. 일명 ‘어깨’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워낙 법보다 힘이 앞서다 보니 누구나 마주치기를 꺼린다. 혹여 시비라도
붙으면 당할 재간이 없는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천적이 있으니 때로 수감되기라도 하면 어찌나 어깨가
추레한 지 결국 헛바람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한때
졸부라고 불리는 이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 때가 있었다. 토지개발의 명목으로 잠자던 땅이 기지개를 켜면서
홀연히 그들의 어깨가 거들먹거렸다. 읍내 주점보다 근교도시의 술집을 찾아서 위세를 떠는 바람에 입방아에
오르곤 했다.
그
이후, 어깨에 힘주는 세력들이 급속히 부상했다. 부동산 투자자, 주식 투자자, 기업가, 고위공무원
등, 어깨의 힘은 완력이 아닌 돈과 권력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돈의 단위들이 듣는 이를 기죽였다. 그러고 보면 갑질 논란이니 무릎 꿇리기니, 다 어깨의 위세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다행히 그 서슬 퍼런 위세들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걸 보면 그래도 세상은 꽤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푹 꺼진 그들의 어깨가
‘어깨’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쯤 되고 보면 내 어깨는 힘을 빼기보다 심이라도
박아 곧추세워야 할 처지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끼니를 굶지 않고,
등을 따뜻하게 눕힐 집이 있고, 마음을 나누는 가족과 친구가 있으니 어쩜 내 어깨 결림은
삶에 움츠려 들지 않고 산다는 반증이 아닐까.
얼마
전에 원고 청탁을 받았다. 욕심을 내는 문예지라 작품을 고르는 마음에 숨이 찼다. 어렵사리 한 편을 골라서 읽고 고치고 또 읽고 고쳐서 마감 날짜에야 겨우 제출했다. 이윽고 책이 왔다. 작품이 마침 앞부분에 자리하고 있어서 편집인들의
눈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나 보다 여겼다. 그런데 보낼 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 새삼 거슬리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객관적인
안목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수록된 작품들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었다. 마침내 나는 보았다. 내 작품에 실려 있는 터무니없는 힘을. 게다가 행간 사이로 촘촘히
박혀 있는 욕심 때문에 숨구멍조차 막혀 있었다. 그건 이미 질식사한 글이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가슴을 열면 어깨는 절로 펴진다. 반듯한 자세의 기본 아니겠는가.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곧고 품이 너그러우면 절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논리와 맞닿는다.
의사의 손끝에서 저항하듯 힘을 주기보다 되레 힘을 뺄 때 팔이 뒤로 더 잘 뻗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자유로울 때 남다른 사색과 독창성이 피워나리라. 그리고
그곳엔 분명 세상을 아우르는 사랑과 들킬 듯 숨어있는 은근한 웃음도 있을 테니.
이
참에 어깨도, 글도 함께 힘 빼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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