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죽음이 두려운 9가지 이유
지난 10월 초 열흘간의 긴 추석 연휴 때 11살, 7살 된 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 갔던 30대의
가장이 가족들을 데리고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7살 난 아들이 미끄러져 바다에 빠지자 30대 가장과 11살
아들이 바다에 뛰어 들었다 모두 익사한 사건이 일어나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렇듯 죽음이란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죽음은 전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인 냥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장례 식장에서 행상(行喪)을
메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고 실제로 무덤을 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다. 이웃이나 친지들이
암에 걸려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해도 그것은 특정인들에게 오는 불행이지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로 치부해 버린다.
어느 목사님이 암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고 고백한 말씀 중에도 이 같은 생각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암으로 사경을 헤매는 성도들을 많이 심방하였지만 그 암이 실제로 나의 문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렇다. 우리는 살기도 너무 벅찬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결에 죽음까지 생각하며 산단 말인가? 하지만 성경은 말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히9:27)고
말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우리들에게도 원하든 원치 않든 이 죽음의 문제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순간에 닥친 이 문제로 인해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Pattison교수와 마로 호스피스의 책임 의사 William Lamers의 공동 관찰에서 ‘임종 환자의 9가기 두려움’이란 좀 특이한 조사 연구가 발표됐다.
①죽음이라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②고독에 의한 두려움 ③가족 친지 등 사랑하는 이들과 떨어진다는 두려움 ④자기 지배상실에서 오는 두려움
⑤신체를 잃는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 ⑥정신적ㆍ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 ⑦자신의 주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 ⑧ 퇴행에 대한 두려움 ⑨진실을 말해
주지 않는 데서 오는 두려움(최근 여론 조사에서 말기 암 환자의85%가 진실을 알기 원한다고 함) 등이다.
사실 죽음에 이르고 있으면서도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위에
나온 9가지 외에도 많은 두려움의 요인들이 더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홀로 떨어져 나가야 하는 것이 죽음 일진데 그것이 어찌 두려움이나 불안의 요인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 가지 우리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흔히 졸업 식장에서 교장 선생님 훈시 중에 “졸업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졸업은 곧 시작입니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말씀은 참으로 진리같은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엄격히 말해 졸업이란 없다. 항상 또 다른 시작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도 이와 꼭 같은 이치다. 불신자들은 죽음이 혹 마지막이라 느낄지
모르지만, 그래서 그들은 그것이 불안하여 인간 윤회를 믿는지 모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결코 죽음은
끝이 아니다.
만약 죽음이 끝이라면 세례 요한이나 스데반 집사님이나 이 세상에서 제명대로 다 살지 못하고
초개같이 자신의 생명을 던져 순교한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이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적으로는 두려움과
슬픔과 고통이 없을 수는 없으나 궁극적으로 죽음이 두려운 일이나 불안해야 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담대하게 외쳤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고 말이다. 결코 믿는 자들에게 사망은 쏘거나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사망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담대하게 “죽으면 죽으리라”고 생명을 하나님께 맡겨 두고 최선을 다해 이 세상과 싸워
이기는 그런 넉넉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우리들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지는 못한다. 우리들의 생명은 오로지 하나님의 크신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