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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26 11:00
눈산조망대/ 색다른 성취감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1,494  

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색다른 성취감

 
권위 시사주간지 타임이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에 금년엔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가 뽑힐 게 거의 뻔하다그는 선거기간 내내 “당선될 리 없고, 당선돼서도 안 된다”던 여론을 뒤엎고 초인적 끈기로 백악관 주인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보다 훨씬 강한 끈기로 일생일대의 목표를 성취한 청년이 있다. 나는 실업자인 그를 트럼프보다 더 존경한다.

워싱턴주 남부도시 밴쿠버 주민인 제프 가마이어(26)는 애팔래치안(2,200마일), 퍼시픽 크레스트(2,650마일), 콘티넨털 디바이드(3,100마일) 등 미국의 3대 장거리 트레일을 올해 모두 종단해 미국 장거리 등산계의 3관왕 엘리트가 됐다. 이들 세 트레일의 길이를 합하면 7,950마일이다. 시애틀-뉴욕을 왕복횡단한 후 다시 시카고까지 가야할 엄청난 거리다.

왕복 고작 5마일의 ‘야산’도 헐떡이며 오르는 나 같은 주말 등산가에겐 이들 트레일은 그림의 떡이다. 평생 동안 그 셋 중 한 개도 종단하지 못하는 전문 산악인들이 부지기수다

무명 산악인인 가마이어는 세 트레일을 모두, 그것도 한해에 잇달아 종단했다. 그는 이 같은 경이적 성취가 육체 아닌 정신적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끈기를 잃지 않았다는 얘기다.

서글프거나 좌절감을 느낀 경우는 여러번 있었지만 중도에 때려치우고 집에 가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장거리 산행은 95%가 정신싸움이라며 그 부문만 확실하게 챙기면 질병, 부상 등 신체 고장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아킬레스건 염증을 앓았고 엉덩이와 무릎에 고장이 생겼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 전진했다고 말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메인에서 조지아까지, 퍼시픽 크레스트는 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을 지나 캐나다국경까지 이어진다.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은 록키산맥에 내린 빗물이 태평양, 대서양, 걸프 만 및 북극해로 분리되는 대륙분기선(Continental Divide)을 따라 뉴멕시코-콜로라도-와이오밍-아이다호-몬태나를 거쳐 캐나다국경까지 이어진다.

이들 트레일엔 바위 길도, 눈길도, 사막 길도 있다. 그는 8개월 반 동안 걸으면서 등산화를 13켤레나 갈아 신었다. 지난 10월 중순 마지막으로 콘티넨털 디바이드 종단을 마쳤을 때 체중이 원래 185파운드에서 160파운드로 줄어 있었다. 얼어붙은 강에 빠져 헤엄친 적도, 땅이 울릴 만큼 강한 천둥이 바로 옆에 떨어진 적도, 무스의 추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나를 더 주눅 들게 만드는 장거리 등산가가 있다. 여자다. 시애틀의 헤더 앤더슨(35) 3년전 퍼시픽 크레스트에서, 작년엔 애팔래치안에서 각각 남녀를 통틀어 역대 최단시간 종단기록을 세웠다. 퍼시픽 크레스트 기록(60, 17시간, 12)은 그 후 남자에 의해 깨졌지만 여자기록으로는 여전히 최고다. 애팔래치안 기록(54, 7시간, 48)은 아직도 건재하다.

동료들 사이에 ‘애니시’로 불리는 앤더슨은 철인이 아니다. 단백질 거부체질이여서 영양실조를 걱정하는 처지다. 10대 땐 체육시간을 기피한 과체중이었다

하지만 10여년전부터 매일 트레킹하며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내가 하산 길에 무릎을 다친 가파른 ‘푸푸 트레일’(왕복 3.6마일, 1,617피트)을 하루에 10번씩 뛰어서 오르내렸다. 36마일, 16,170피트다.

앤더슨은 소위 ‘발저 리스트(Bulger List)’에 올라 있는 Mt. 레이니어 등 워싱턴주 최고 험산고봉 100개 중 지금까지 약 3분의2를 섭렵했다. 집보다 텐트에서 더 많이 잔다. 그녀는 목표달성의 성취감을 추구할 뿐 기록이나 명예는 괘념하지 않는다며 밴쿠버의 가마이어처럼 “장거리 트레킹은 신체 아닌 정신적 싸움”이라고 강조한다. 끈기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등산화 13 켤레가 헤지도록 250일간 8,000마일을 걸은 가마이어나, 보통 여성들처럼 살림살이하기보다 일년 열두달 산만 타는 앤더슨의 끈기가 부럽다

나는 지난 48년간 줄잡아 5만 시간동안(거짓말 좀 보태서) 신문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대단한 끈기인 것 같지만 그게 ‘잡’이고 재미였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다. 가마이어와 앤더슨이 더욱 존경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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