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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김 준] 최상의 질만 요하는 것

시애틀N 조회 : 3,329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최상의 질만 요하는 것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 중에, ‘적당히 하라라든가 웬만큼 하라라는 말들이 있습니다

바친 노력에 대한 응분의 찬사나 대가가 따르지 않을 때 그 일에 전력하지 말도록 충동을 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고, 너무나 과도한 성취욕 때문에 건강도 돌보지 않아 과로에 지친 사람에게 충고의 말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지나치게 빈틈없이 철저하게 하려는 완벽주의자들에게 필요 이상의 노력이나 시간의 낭비를 절제시키기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적당히’ ‘웬만큼이라는 말들이 다양하게 사용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하고 적절한 도움말이나 유익한 충고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부과된 믿음이나 사랑에 있어서는 적당히 믿어라라든가 웬만큼 사랑하라라는 말은 도저히 어울리지도 않고 전혀 비합리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나 사랑은 그 본질상 적당히…’라든가 웬만큼…’ 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할 수 없는 용어들로써 그것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최고 최선의 질만이 요구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이 있다라고 말할 때 그 말 속에는 비록 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그 믿음은 당연히 최상의 믿음을 전제로 하는 말이고 또 사랑을 베푼다라고 말할 때 그 말 속에도 비록 긴 설명이 따르지 않아도 그 사랑에는 당연히 최선의 사랑의 농도가 함유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때문에 적당히 믿는다라든가 웬만큼 사랑한다라는 말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임을 표방하는 그리스도인도, 그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 속에는 당연히 최고 최선의 신앙인임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데에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가 종교가 아니 듯이, 그리고 사이비 기독교가 참 기독교가 아니 듯이 사이비 신자도 물론 참 신자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사이비 신자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압도적인 표 차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던 때가 있었고, 독실한 신자라는 소개 한마디로 신용 대출이 용이하던 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추락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신망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은 계속 가리어지고 있습니다.

필자는 일본의 문화나 문명이 부럽지 않고, 그 나라의 풍습이나 전통도 부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 크리스천들의 신앙만은 부러워합니다

우리나라 크리스천 수가 전체 인구의 30%에 달하는 반면 일본의 크리스천 수는 전체 인구의 겨우 2%에 불과하지만 기독교 서적 출판이나 판매량은 우리나라보다 몇 배나 더 왕성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질에 있어서도 대단히 높은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 분은 크리스천입니다라고 누구를 소개하면 그에게 차렷자세를 취하면서, “, 그러십니까?”하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크리스천들이 사회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비록 겨자씨만큼 작을지라도, 그리고 우리가 베푸는 사랑의 양은 비록 지극히 작을지라도 그 질에 있어서 만은 언제나 최고 최선을 지향해 나아갈 때 역시 최상의 신앙 인격을 구비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인은 사회에 빛이 되고 하나님께 진정한 영광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김 준 장로의 <신앙과 생활>을 추가로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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