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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의 시선] 싸가지 있는 '친노 프레임'을 다시 짜라



<이유식 뉴스1 주필>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는 斷想


<...그러나 분열적이고 이중적인 개인적 처신이 초래한 정치파산을 정책과 가치의 파산으로 몰고간 그의 태도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우리사회가 신기루를 좇아다녔고 허깨비와 씨름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탈지역적 정치질서, 동반성장, 균형발전, 남북화해·공존, 부동산투기 근절, 일하는 복지, 비전 2030, 스웨덴식 노사모델, 교육·의료개혁 등등 그의 시대에 제기된 의제들은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을 위해 반드시 걸러야할 것들이었다. 물론 동원한 용어는 과격했고 태도는 불량스러웠으며 관계는 적대적이었다. 때로 그런 언행들이 정책추진의 결정적 걸림돌이 되는 자가당착을 범하기도 했으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시대정신의 그릇에 담긴 가치마저 배척할 것은 아니다...>   


필자가 7년 전인 2009년 4월 말 ‘노무현 5년은 신기루였나’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의 일부다. 노 전 대통령이 김해 사저 부근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생을 마감하기 한달 전, 가족과 측근 비리 의혹에 따른 검찰 소환이 임박해지자 퇴임 후 운영하던 인터넷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을 접은 직후였다. 직접적 계기는 분신 같았던 친구 정상문의 구속이었다. 당시 그는 지지자들이 자신을 정치적 상징이나 구심점으로 얘기하는 것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다며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고 사실상 정치적 도덕적 파산을 선언했다.     

필자가 당시 글을 쓴 의도는 우리 정치사에 ‘문제적 이단아’로 등장했던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시행착오를 겪고 구설수에 휘말렸다고 해도 그가 시대화두로 제시하고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가치와 의제들까지 함께 묻혀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해방 후 반세기 이상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기득권 주류세력을 향해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한 특권과 반칙의 역사”라는 독설을 날리고 뜬금없이 대연정을 제의하는가 하면, 투기와 전쟁을 치른다며 임기 내내 강남 7구와 씨름하고 돌연 육로로 휴전선을 넘어 북한지도자와 고수위 합의를 이룬 좌충우돌식 그의 시대을 기억조차 하기 싫은 집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태풍이 바닷속을 뒤집어 새로운 균형을 창출하듯 그로 인해 권위주의, 지역주의, 수도권집중 등 한국사회의 해묵은 모순들이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를 맞고,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비합리적 관행과 기득권에 대한 시민적 각성을 일깨운 것,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에 대비한 우리사회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한 것 등은 가볍게 묻힐 일이 아니다. 본인이 정치·도덕적 파산을 선언하고 죽음을 선택했음에도 그를 기억하고 되살리려는 세력, 이른바 ‘친노’가 오늘날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온 힘도 이런 배경일 것이다. 또 역대 대통령 호감도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최근까지도 40%에 근접한 지지율로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는 것 역시 작금의 정치상황에 대한실망과 시대에 도전한 ‘정치 풍운아’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 것일 게다.      

반면 그를 상징하는 친노가 금기 혹은 경원시되는 흐름 또한 엄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엔 종종 ‘패권주의’라는 권력적 용어가 따라붙고 때로는 ‘싸가지 없는’이라는 관용구가 그 앞을 수식하기도 한다. 특히 오늘날 정치권의 관용구가 된 '친노 패권주의'는 실체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주류 사회 및 기득권에 대한 적대감으로 똘똘 뭉쳐 배제와 독점를 고집하며, 논리보다 패거리적 위세로 반대세력을 제압하려는 갑질 행태로 얘기되는 게 일반적이다. 친노 핵심으로 지칭된 일부 인물과 집단의 행태와 언행이 줄곧 이런 이미지를 강화했음도 물론이다.          

문제는 이같은 부정적 친노 인식이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일반 국민들에게 각인된 친노 프레임은 장소 가리지 않고 기득권을 공격한 노무현의 격정과 오버랩되며 편가르기, 전투적 언행, 타협 거부, 정의 독점 등의 1차원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의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친노의 열정과 순수한 에너지는 분명 긍정적인 힘이었으나 일부가 열성 지지층과 SNS정치에 중독되면서 말이 거칠어지고 정치를 천박하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비록 말은 과격했고 태도는 불량스러웠으며 관계는 적대적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시민적 각성에 의한 성숙한 민주주의 실현’과 ‘함께 사는 세상’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는데, 정작 친노 세력은 그의 유지의 계승발전에 대한 고민없이 정치공학적인 투쟁과 배제에만 집착한다는 지적일 것이다.     

'좌희정'으로 불리던 안희정 충남지사는 2007년 12월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야당) 집권 10년의 역사를 계속해서 지키지 못하고 민주개혁세력이 우리대에 이르러 사실상 사분오열 지리멸렬의 결말을 보게했으니 우리가 어찌 이 책임을 면할 수 있겠냐”며 ‘폐족(조상의 큰 죄로 벼슬을 못하게된 자손)’을 자처했다. 하지만 이후 친노는 폐족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 친노 패권주의라는 기형적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개방.공유.투명성을 지향했던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친노 패권엔 폐쇄.배제,불투명이라는 딱지가 붙었으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안 지사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과거와 결별한 새로운 진보 프레임을 짜야함을 역설했다.     

오는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는다. 8년만에 국회권력을 되찾고 국정주도권까지 넘보는 야권으로선 감회가 깊을 것이다. 이날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 전 대통령 추도식도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7주기를 맞아 5월 초 사저가 개방되자 봉하마을 방문객이 이미 두배 가까이 증가했고 주요 정당은 '노무현 마케팅'에 열올리고 있다. 7년 전 노 전 대통령 소환수사를 부른 박연차 정관계 로비를 수사했던 홍만표 변호사가 정운호 로비 의혹에 휘말려 검찰소환을 앞두고 있는 것도 어떤 운명처럼 느껴진다.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 많은 악연을 이어가며 2007년 ‘대통령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그를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처지와도 대비된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는 여전히 양 극단을 넘나들고 있고 아예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도 급격히 늘고 있다. 그런 만큼 ‘노무현 치세’를 그리워하는 친노 세력은 존재의 의미와 양태, 역할을 재정립할 때가 됐다. 세상을 거칠고 격정적으로 두둘기면 관심을 끌던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10년 전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친노가 진정으로 노무현을 바로 세우려면 '싸가지 있게 노무현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그가 간절히 원했던 가치와 지향을 확장할 수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딴 세력은 둘뿐이다. 이른바 친노와 친박이다. 이 두 세력은 가치와 지향, 시대성에서 물과 기름 같이 상극이지만 누구도 넘보기 힘든 결속력을 자랑한다. 산업화와 민주화 사이의 긴장감을 높이며 적과 아군을 먼저 따지는 폐쇄성 또한 밀리지 않는다. 노무현 시대에는 친박의 국정 발목잡기가, 박근혜 시대엔 친노의 국정 몽니가 피차의 한(恨)이 된 점도 역설적이다. 그렇다면 혹시 이런 기대는 어떨가.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진 두 적대세력이 화해한다면…. 

꿈 깨기 전에 노무현 7주기 맞는 친노에게 먼저 제안하고 싶다. 싸가지 있는 '친노 프레임'을 다시 짜보라고.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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