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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창의 사족] 누가 부처를 팔아 죄를 짓는가



<이기창 뉴스1 편집위원>

어떤 도적놈이

나의 가사장삼을 빌려 입고
부처님을 팔아
자꾸 죄만 짓는가.

한국불교의 적통 조계종 종정의 자리에서 열반에 든 퇴옹(退翁) 성철(性徹)스님(1912~1993)이 생전에 남긴 수많은 법어 가운데 한토막이다. 바로 절집을 겨냥한 할(喝)이요 방(棒)이다. 이 법어를 대하면, 가야산 호랑이로 불리던 스님이 당장이라도 뛰쳐나와 “중노릇 똑바로 하라”고 호통을 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스님이 누구던가. 이른바 ‘10·27법난(法難)’으로 깊은 상처를 입고 신음하던 한국불교를 다시 세우는 데 심혈을 기울인 대선사였다.(10·27 법난이란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탈취 명분을 찾기 위해 사회정화라는 미명 아래 1980년 10월27일 전국의 사찰과 스님을 대상으로 자행한 폭거로, 1600년 한국불교 사상 최악의 사태로 기록된다.)

성철스님은 참선과 화두(話頭) 탐구를 앞세운 선객이면서도 교학은 물론 동서고금의 학문에 두루 밝았다. 특히 돈점론(頓漸論)에 다시 불을 지펴 조계종단의 수행풍토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돈점론이란 수행의 방법론이다. 단박에 깨우쳐 더 이상 닦을 필요가 없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 뒤로도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오점수(漸悟漸修), 두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이다. 성철스님은 돈오수행의 표본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스님은 암울한 80년대를 살아가던 한국인들에게 자기를 바로 보고 돌아보게 하는 법공양(法供養)을 가없이 베풀었다. 합천 해인사 해인총림(海印叢林)방장이자 조계종 종정으로 스님은 새해와 초파일은 물론이고, 법석(法席)이 마련될 때마다 사회성 짙은 법어를 토해내 많은 이의 마음을 보듬고 달래주었다. 성철스님은 동시대를 살았던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 개신교의 한경직 목사와 더불어 사회의 큰어른이자 버팀목 역할을 한 것이다. 

글머리에 소개한 성철스님의 법어는 당연히 절집을 향한 질타다. 그 사자후는 석가모니 부처를 닮아가기는커녕 시속에 물들고 세태를 좇는 많은 사찰들과 스님들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성철스님의 자성의 소리를 더 들어보자. “부처님 파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로 많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소위 불공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와서 불공하여 명(命)도 받고 복도 받아가라 하면서 승려는 목탁을 칩니다. 목탁이란 근본을 전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성철스님은 이러한 자기반성으로 인해 한때 종단에서 큰 오해를 받기도 했다. 심지어 “우리 스님네들은 모조리 굶어죽으란 말이냐”는 원망까지 샀다.  

사실 출가승은 목사나 신부처럼 성직자가 아니다. 쉽게 말해 중은 직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직 깨달음의 길을 가는 수행인일 뿐이다. 깨달음은 부처의 삶을 사는 것이다. 마음의 눈을 떠서 자비의 빛을 온누리에 비추는 삶이 출가수행인의 본분이다. 수행인에게 필요한 소유물은 일표일납(一瓢一衲) 일의일발(一衣一鉢)뿐이다. 말 그대로 표주박 하나와 누더기 한 벌로 족한 삶이다. 이 어구는 그래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수행인을 가리킨다. 일의일발은 수행인이라면 누구나 이승을 떠날 때까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생활도구이다. 출가자는 머리를 깎고 잿빛 염의를 입는 그 순간부터 소유를 제한하는 삶을 각오해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는 소유가 고뇌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탐욕과 집착을 버렸다. 집착이 고통의 싹을 키우고 결국 스스로를 결박하게 만든다. 집착이 모든 욕망의 씨앗인 것이다. 

속박의 크기는 소유의 많고 적음에 비례한다. 스님네들이 걸치는 가사를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도 부른다. 사람들이 쓰다 버린 천 조각들을 주워 깨끗이 빨아 누덕누덕 기워 옷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가사에는 이렇듯 철저하게 나를 버리고, 무소유의 삶을 살며, 자비를 실천하라는 부처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올해도 석가모니 부처가 이 땅에 나오신 사월초파일(5월14일)을 앞두고 있다. 기자가 근무하는 직장 근처의 조계사도 수많은 오색등으로 뒤덮여 있다. 저마다 화려함을 다툰다.  그나마 예전과 달리 크기의 차이가 그리 심해 보이지 않는다. 등값에 따라 크기에 차별을 둠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부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등불은 지혜, 곧 깨달음의 빛이다. 부처의 맥을 잇는 전통을 이름하여 전등(傳燈)이라 일컫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불자들은 직접 등을 만들어 절에 내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부분의 사찰 또한 등을 밝히기 위해 오늘날처럼 등표(燈票)를 돌리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초파일의 등은 사찰의 수입과 직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불자가 아닌 사람들이 등불을 ‘돈불’, 등표를 ‘돈표’ 라고 비아냥대는 것을 마냥 나무랄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성철스님의 일갈은 불자들의 피와 땀이 밴 시줏돈은 중생을 위해 써야지 허투루 낭비해선 안 된다는 경책인 것이다.    

부처님오신날, 그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 오색등의 행렬 속에서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정신을 되살려본다. 부처 생전, 입에 풀칠조차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한 여인이 지극정성으로 빚어낸 한없이 초라한 등불 하나가, 화려하게 장식된 모든 등불들이 꺼진 뒤에도, 홀로 새벽을 밝히지 않았던가. 빈자일등은 곧 마음의 빛이요, 자비의 빛이다. 석가모니 부처를 닮은 영원한 등불일 것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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