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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의 시선] 안철수를 위한 작은 변명



이유식 뉴스1 주필


“국민의당과 저는 힘들고 두려운 광야에 서 있습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사방에 적들 뿐입니다. 그래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땅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해 모두 이 광야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6일 기자회견)  

“평소 도통 말이 없는 아내가 말을 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호사가의 안줏거리, 언론의 조롱거리가 돼도, 여의도의 아웃사이더가 돼도, 또 소위 정치9단의 비웃음거리가 돼도 처음 시작할 때 그때 그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된다’고.”(8일 서울 노원병 출마선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사면초가에 빠진 양상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야권통합-연대 카드를 던진 것을 계기로 당 안팎에서 그를 향한 공격과 압박이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가 ‘광야 옥쇄론’까지 거론하며 결기를 보였지만 재야 등 진보진영은 ‘벚꽃(사쿠라)세력’ 운운하며 연대수용을 요구하고 급기야 김한길 천정배 등 국민의당 공동창업주는 당직사퇴에 이어 탈당카드까지 내미는 형국이다.      

야권연대 혹은 통합제안을 거부하는 안 대표를 공박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 폭주를 막으려면 반드시 4월 총선에서 야권이 개헌저지선을 확보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3당분열 구도로는 여당에 개헌선을 훌쩍 넘는 의석을 선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야권이 100석을 넘기려면 호남 의석과 비례대표 지분을 감안할 경우 충청과 수도권에서 50석 이상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19대 총선에서 5% 미만의 차이로 야당이 승리한 곳이 30여곳에 달할 정도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곳이 많은데다 이후 유권자연령대가 한층 보수화한 만큼 일여다야(一與多野) 총선구도는 야권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선거는 구도’라는 정치권의 오랜 금언에 비춰봐도 그럴 확률이 높다.     

하지만 안 대표는 이런 해석을 강하게 밀어낸다. “무조건 통합을 주장하는 것은 익숙한 실패의 길을 답습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항간의 우려와 달리 “국민들은 퇴행적 새누리당에 개헌저지선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도 덧붙인다. 적대적 공생관계의 기득권 양당체제 타파를 명분으로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한 안 대표에게 진보진영의 때늦은 통합주장은 흘러간 옛노래거나 고장난 축음기에 다름 아닐 법하다. 그는 당지도부의 통합갈등이 격하게 표출된 11일에도 "제가 90일 정도 전에 혈혈단신, 허허벌판에 나섰다고 말씀드렸고 이제 많은 분들이 가시밭길에 동참하고 계신다"며 '독자노선'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런 그에 대해 같은 당 대주주인 김한길 의원은 “집권세력의 개헌선 확보를 막기 위해서라면 국민의당은 그야말로 광야에서 죽어도 좋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며 “지금은 박근혜 정권의 확장성을 저지하는 통합적 국민저항체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연대론을 공개적으로 띄웠다. 그는 한때 김종인 대표의 진정성을 연대의 조건으로 내놓는 등 물러서는 듯했으나 11일 마침내 독자생존론을 고집하는 안 대표에 대한 항의로 당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또다른 대주주인 천정배 대표 역시 “개헌저지선을 내주면 국민의당이 80~90석을 가져와도 재앙”이라며 연대론으로 안 대표를 압박하다가 10일밤 “연대 공감대를 만들지 못하면 갈라설 수밖에 없다”고 ‘최후통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야 원로단체인 다시민주주의포럼을 이끄는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는 안 대표의 ‘광야옥쇄론’을 거의 조롱조로 비판했다. “안 대표는 광야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욕심을 훌훌 털어내는 것이 광야의 힘인데 그 분은 광야보다 넉넉한 가정에 살아온데다 아직 젊어서 이런 뜻을 잘 모를 것이다.” 진보성향의 한 교수는 안 대표를 향해 “한국정치의 백신이 될 것인가? 일당지배체제의 악성바이러스가 될 것인가? 현명한 선택을 바란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묻고싶은 게 있다. 일여다야 구도는 야당에 필패로 돌아올 것인가, 야권의 개헌저지선 확보가 20대 총선의 절대목표인가. 개헌저지선이 뚫리면 어떻게 되는가. 솔직히 말해 설령 야당의 처지가 아무리 궁핍하다고 해도 20대 총선의 의미를 개헌저지선 확보에 두는 것은 너무 초라할 뿐 아니라 패배에 길들여져 감각마저 잃은 느낌을 준다.
   
박근혜 정부의 난폭한 국정운영을 저지하기 위한 마지노선이 개헌선 확보라는 야권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해도 그것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될 수는 없다. 아직도 개헌저지선 확보에 목을 맬 정도로 야권에 패배 그림자가 짙다면, 설령 그 목표를 이룬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는 까닭이다. 적대적 공생관계에 기생하는 기득권 구조가 더욱 단단해지고 대화없는 완력만 판칠 가능성이 되레 더 크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헌저지선에 올인할 것이 아니라 지난 박근혜 정부 3년동안 야당이 어떤 전략으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부터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것이 순서다.      

개헌저지선 목표에 대한 의문 이상으로 김종인 대표가 던진 야권연대 제안의 절차와 방법도 석연치 않다. 같은 지붕 아래서 한솥밥을 먹다가 당의 패권주의적 운영을 못견뎌 탈당해 제 3당의 정치지형을 넓혀가던 와중에, 김 대표가 아무런 내부조율이나 전략없이 말 그대로 호객행위 하듯 상대당을 향해 통합과 연대 얘기를 사납게 날린 것은 정치현실이나 정치도의상 비판받을 구석이 많다. 연대와 통합의 틀을 논의하기 위한 시간과 인프라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칠게 제안을 던졌으니 상대방의 반발을 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역사와 현실을 모르는 무책임하고 순진한 생각이라고, 여당과 박근혜 정부만 돕는 우파 모험주의적 접근이라고 비난받을지 모르겠으나 최근의 야권통합-연대 논란은 의심스런 목표와 잘못된 방향, 미숙한 절차와 부적절한 시점 등으로 동력과 설득력을 잃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 책임은 안 대표만 질 일이 아니다. 18대 대선에서 48%의 표를 얻은 당을 바닥까지 추락시킨 패권주의, 운동권 정치를 휘두르거나 방치·방관한 사람은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안 대표가 야심차게 출범시킨 국민의당이 100일도 안돼 좌초 위기에 처함으로써 그는 또다시 실망스런 정치력을 드러냈고 깊은 내상을 입은 기색이다. 그의 정치비전을 장식했던 화려한 수사는 이미 빛이 바랬고 공허한 슬로건만 나부낀다. 또 총선 결과에 따라 민주개혁진영을 분열시킨 장본인으로 손가락질 받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수십년간 우리 정치를 옭아매온 퇴행적 양당구조를 깨겠다고 광야로 나선 그의 의지는 여전히 폄하하고 싶지 않다. 조롱과 비웃음 역시 강철수로 가는 거름이다. 20대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정치는 계속 진화할 것이고 수명을 다한 구조와 관행은 반드시 깨질 것이기에.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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