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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구조조정과 약탈적 착취가 트럼프 당선시켰다



신장섭 / 싱가포르대 경제학과 교수


도널드 트럼프가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는 '화난 미국인들(Angry Americans)'의 반란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결격사유'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개인적 문제들을 여러가지 갖고 있다. 미국의 미래를 좋게 만들 능력이 있는지, 오히려 나쁘게 만들 것인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화난 미국인들은 힐러리 대신 트럼프를 택했다. 힐러리는 자신들을 화나게 만든 기존 체제를 만든 장본인이고 따라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트럼프는 최소한 기존의 '판'을 뒤흔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심리가 이번 대통령 선거를 결정지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이 미국인들을 그렇게 화나게 만들었는가? 필자가 보기에는 '구조조정'과 '약탈적 착취'가 그 핵심이다. 미국경제는 1980년대부터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놓여 있었다. 일본이나 독일 기업들의 도전에 대응하려면 미국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만트라가 미국사회를 지배했다. 미국인들은 1990년대 이후 미국경제가 구조조정에 성공해서 활력을 회복했다는 얘기를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대단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갖고 있던 직장을 잃기도 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옮겨야 하기도 한다. 연봉이 깎이는 경우도 많다. 실직자 생계나 전직(轉職)과정 등을 지원해주기 위해 사회적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이 어려움은 구조조정이 성공하고 그 과실이 나에게 돌아와야 보람있는 것이 된다. 사회도 그 과실이 두루 공유되어야 선순환에 들어간다.

미국경제가 구조조정에 실제로 성공했는지 여부는 논외로 치자. 필자는 "미국경제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회복됐다"는 1990년대 이후의 지배적 담론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동안 구조조정의 과실이 지극히 불균형하게 분배됐다는 점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 근로자들의 임금상승률은 계속 노동생산성 상승에 뒤처졌다. 그 전 반세기 동안 임금상승과 노동생산성 향상이 함께 이뤄졌다. 미국 중산층이 만들어지고 번성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서 미국 근로자들은 기여하는 것보다 낮은 보상을 받아들여야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자신들이 '개미'라고 폄하하던 일본 근로자들보다도 평균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하게 됐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도 크게 높아졌다.

그러면 구조조정의 성과는 누가 가져갔는가? 일부 금융투자자들과 스톡옵션을 많이 받는 최고경영자들이었다. 미국의 구조조정이 '주식시장 위주의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이다.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에 구조조정의 초점이 두어졌다.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이나 근로자의 복지 등은 뒷전으로 밀렸다. 금융투자자와 최고경영자간의 '불경한 동맹'(unholy alliance)은 미국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미국기업에서는 3조6600억달러(약 4100조원)의 돈이 순유출됐다. 그중 52.5%, 약 2100조원에 달하는 가장 큰 부분은 자사주매입에 사용됐다. 2100조원을 잘 사용하면 기업의 장래를 위해서는 국가경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미국의 금융투자자들과 최고경영자들을 '주주가치'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이 거액의 돈을 '주주가치 증대'라는 명목으로 주식을 사서 태워 없애는 데에 썼다. 

순유출 자금 중 35.7%, 약 1460조원은 배당에 사용됐다. 미국기업들은 그 전에도 다른 나라 기업들에 비해 배당성향이 높았다. 1990년대 구조조정 이후 배당성향은 더 높아졌다. 나머지 11.8%, 약 480조원은 애플이 현재 아일랜드에서 문제되고 있는 것처럼 조세 회피 등의 목적으로 해외에 빼낸 돈이었다.

금융투자자들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그동안 기업들이 '잉여 현금'(free cash flow)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며 이를 주주에게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이들이 실제로 빼낸 것은 '잉여'만이 아니었다. 이 기간 중 미국기업들이 벌어들인 경상이익 전체보다 많은 규모였다. 미국기업들은 이익을 금융투자자들에게 다 내주고, 사업에 필요한 투자나 다른 비용은 '구조조정'을 통해 임금을 줄이거나, 자산 매각, 부채확대 등으로 동원했다. 근로자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주체가 됐다. 

금융투자자들은 이러한 '구조조정'을 거쳐 기업의 주가가 올라가는 '가치창조'(value creation)가 이뤄졌다고 합리해왔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이것은 '약탈적 가치착출'(predatory value extraction)이었다. 주식투자자는 생산활동에 기여하는 것이 거의 없다. 엔젤, 벤처투자 등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투기'를 통해 돈을 버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법적으로도 이들은 '잔여'(residual)재산 청구자이다. 세금, 임금, 금융, 사업 비용 등을 다 제한 뒤 남는 이익 중 일부를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투자자들은 자신이 취할 이익을 상수(常數)로 만들어 버렸다. 대신 근로자들에게 돌아갈 임금이나 기업이 미래를 위해 투자할 돈을 잔여로 취급됐다.

미국에서 금융투자자들의 힘이 이렇게 강해진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펀드자본주의 추세로 기관투자자의 주식보유가 급증했다. 1970년에 20%를 넘었던 기관보유비중은 지금 70% 수준에 도달했다. 그것도 소수 기관투자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2016년 중반 10대 기관투자자들은 미국 전체 주식의 42%를 장악하고 있다. 4조7000억달러 자산 규모로 세계 최대 기관투자자인 블랙록은 미국 상장기업 5개 중 1개에서 최대주주이다. 한국 재벌이 어린애로 보일 정도로 초거대 재벌이다.

기업과 금융투자자간 힘의 불균형이 더 극심해진 이유는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투자자들의 힘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금융규제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기관투자자들이 경영진에 비해 힘없는 '소액주주'이고 이들의 힘을 키워줘야 한다는 '주주행동주의' 논리를 미국의 금융당국과 정치인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현재 이러한 힘의 불균형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집단이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다. 이들이 앞장서서 경영진을 공격하며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주주가치'를 위해 현찰자산을 배분하라고 주장하면 다른 기관투자자들이 그 뒤를 받쳐준다. '공동투자'(co-investment)나 '이리떼(wolf pack) 공격'이 금융가의 관행이 되어 버렸다. 미국에서 '약탈적 자본유출'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활약이 본격화된 시기와 일치한다.

국내의 많은 정치인들이나 정책담당자들 및 학자들은 아직까지 미국경제와 사회가 왜 이렇게 나빠졌는지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눈을 감는 것 같다. 아직까지도 미국경제가 한국이 따라야 할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미국경제를 이렇게 나빠지게 만든 수단들을 한국이 '경제민주화'를 달성하는 수단이라며 더 강하게 도입하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는 지금 '주주독재'가 벌어지고 있다. 주주 중에서도 일부 주주들만 크게 이득을 봤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살기 어려워진 '1%대 99%' 구도가 고착되어 있다.

트럼프가 이 약탈적 구도를 바꿀 수 있는 적임자라고는 전혀 얘기할 수 없다. 본인이 '1%중의 1%'에 속해 있고 그런 삶을 계속 누리기 위해 편법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생활을 했다.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표적 기업사냥꾼 출신이자 헤지펀드 행동주의자인 칼 아이칸을 미국의 재무장관으로 임명하겠다고 얘기한 바도 있다.

트럼프가 이민자와 교역상대국을 공격하며 미국 사회문제의 적(敵)을 외부에서 찾는 극우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미국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본인이 갖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인 중심의 강한 미국 건설이라는 트럼프의 정치구호에 환호를 보냈고 그를 백악관의 주인으로 뽑아줬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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