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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수필-공순해] 복잡한 계산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장)
 

복잡한 계산

 
첫 근무지에서 첫 월급을 못 받은 일이 있다. 지금도 그러나 모르겠는데 그때 공무원은 신원조회 후 임용됐다. 내 발령은 사대 졸업 예정자들을 서울시 임용 예정자로 내정해 미리 근무하게 한 데서 비롯됐다. 하니까 시경 담당의 사인이 있어야만 임용 완료가 돼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한데 함께 발령받은 동료 7명은 첫 달 월급을 받았다.

사회 초년병으로 겪는 불이익에 상처가 컸다. 어느 날, 보다 못한 선배 교사가 충고했다. 경찰 담당자에게 삼천 원 봉투를 갖다 주면, 첫 달 월급이 소급해 지급된다고. 화들짝 놀라는 내게 그는 공무원 임용이 다 그리 이루어진다며, 첫 월급을 포기할 건지, 삼천 원을 아낄 건지 선택하라고 웃었다

월급은 오만 원, 봉투는 삼천 원. 난 무식(?)하게도 오만 원 잃는 게임을 선택했다. 정당하지 않은 것은 수용할 수 없음. 담당자의 월급은 보잘것없으나, 그는 매우 비싼 집에 산다고 했다.

그러나 일은 게서 끝나지 않았다. 항상 싸늘하게 쏘아 보는 교장으로 고민하자, 이번엔 또 다른 선배 교사가 조언했다. 우리 교장은 여자여서 목통이 크지 않아. 다른 학교는 봉투지만, 여긴 펭귄표 통조림 한 상자면 되니, 집으로 찾아가 봐. 상사에게 그런 인사 차려야 한단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나는 그저 아연했다. ? 왜 그래야 하는데요? 남의 집 방문할 때 빈손으로 가지 마라.

그간 배운 예절 교육은 그게 다였다. 관계를 맘으로 신실히 맺어야지, 봉투로 맺으라고 배운 적이 없다.

아무튼 직장 생활은 고달팠다. 신규 교사로 딱 한 번 치르는 연구 수업을 세 번째 학교에서도 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물질이었을까, 인간관계였을까? 찾아간 직원에게 봉투를 두고 가라고 턱으로 가리켰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게 소위 관계 맺기이며, 소통의 방법일까.

한데 점입가경이었다. 퇴직 신청하고 한 달 지났으나 퇴직금 수령 통보가 오지 않았다. 답답해서 역시 공무원이었던 육법전서, 작은 오빠에게 하소연했더니 왈, 공무원이 공무원 하는 일을 못 믿으면 누가 믿겠냐, 기다려 봐, 했다. 그 말에, 내가 조급병이 들었구나,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하나 시간은 그냥 지나갔다. 뉴욕으로 출발해야 할 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하는 수 없이 연금공단으로 직접 찾아갔다. 한데 담당자 말이 의외였다. 교육청 서류가 아직 넘어오지 않았단다. 그러며 그는 날 딱하다는 듯 쳐다봤다. 근무지 교육청에 가 보세요. 담당자에게 책상 밑으로 슬쩍 봉투를 넣어 주면 그 자리에서 서류를 내줄 겁니다. 아마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앞 통수 한 대 딱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작하더니,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교육청 담당자는 직접 찾아온 퇴직자에게 서류 봉투를 내던졌다. 정말 재수 없어, 하는 얼굴로.

시작과 끝이 봉투였다면, 그간 13년 또한, 봉투와의 전쟁이었다. 막무가내 두고 가는 분들과의 투쟁. 왜 그들은 그래야만 했을까. 그게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비결이라 여겼을까. 그게 그런 미덕의 물질이었다면 왜 난 그걸 그리 거부해야만 했을까.

오염(?)되지 않으려 안간힘 했던 13년간, 그러나 오아시스 같은 시간도 있었다. 네 번째 학교, 거기서 난 여교사회 회장으로 상사 댁에 무시로 드나들었다. 봉투보다 더한 물건들도 들고. 그 상사는 교사들을 실력으로 인격으로 인정해줬다

학교 분위기는 신뢰로 화기가 넘쳤다. 경계와 질시의 눈초리가 없던 직장. 후배 교사들은 날 기개(?) 있는 선배로 좋아했다. 거길 떠날 땐 심지어 남자 교사들조차 서운해했다. 왜 가세요? 좀 더 계시잖고. 그때도 봉투로 해서 은따당하는 동료들이 있긴 했다. 그럴 때면 난 후배들에게 넌짓 말했다.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니 존중합시다. 판단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지.

보통 촌지(寸志), 하면 모든 사람이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 냄새나서 치우고 싶지만, 하는 수 없이 엉거주춤 들고 있는 똥 막대기 같은 것. 요즘도 그에 관한 한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직위 남용이면 비난의 대상에 올라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는 여기서, 20불 이상 받으면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여기서, 선생에게 고가의 선물을 해야 맘이 놓인단 한인 학부형들. 젊은 학부형에게 이런 고백을 들었을 때, 잃어버린 첫 월급이 떠올랐다.

관계 맺기에 뭔가를 더 얹어야만 맘이 놓인다며 복잡하게 계산하는 사람들은 여전하구나. 더 갖고 싶고, 더 인정 받고 싶어서. 눈이 더욱 밝아진 오늘날의 유혹, 복잡한 계산, 단순한 계산. 이의 선택은 본인의 의지다. 쎄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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