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이제
절기가 바뀌어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몇 달 전만 해도 난 청년처럼
덥다 느끼며 살았지
어제 밤사이 이슬이 내리니
다른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어
보고 싶은 단풍도 제철을
찾아오고
나 또한 나의 시절을 만났으니
어찌 산에 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산안개의 은은한 기류를 타고
쉬엄쉬엄 걷고 싶다네
앞으로 연락이 뜸해도 참고
기다리게
그리운 생각도 이젠 느리게
오는가
내일은 한 걸음 더 느린
마음일 거야
강둑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보면
요람으로 향하는 귀소본능
탓에
연어를 따라 상류의 얕은
개울로 오르고 싶다네
나의 팔다리는 연어 지느러미를
닮아가고 있지
회향할 수 있는 낡은 지느러미만으로
족하니
난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어도
좋다네
애벌레는 세상이 끝났다 절망하는
순간 화려한 나비로 탄생한다지
가끔 두꺼운 각질에 쌓인
애벌레가 되는 꿈을 꿀 때면
뜨거운 이승의 불길에 허우적거리다
불나비로 환생하며 나의 숨통은
다시 터진다네
살아있다는 건 매일 다른
허물을 뚫고 깨어나는 일
오늘은 낙엽의 껍질을 벗고
일어나니
멀리 강물 소리가 유난히
맑게 들려오고
감미로운 풀벌레의 노래가
흥겨워
내 방의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지
친구, 이제 가을이면 매일 가을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