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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수필-정동순] 개치네-쒜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개치네-쒜


윤슬, 우듬지, 상고대, 는개, 잉걸, 드레, 목새, 개치네쒜.

사람들은 이 말을 몇 개나 정확히 알까? 우리말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가끔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이들은 국어사전에도 엄연히 등재된 순우리말이다.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 행시방이 있다. 주어진 운에 따라 삼사오 행시를 짓고 운을 던지면, 다른 이가 받아서 그 운으로 행시를 짓는다. 한동안 행시 짓기에 열심이었는데, 운이 ‘는’이나 ‘ㄹ’로 시작하면 머리를 싸매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펼쳐보던 책이 있다. 엄청난 부피와 무게를 가진 세 권짜리 <표준국어대사전>이다. 국립국어국어원이 1999년 한글날에 초판을 발행했다. 이민 온 후로 제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행시 짓기에서 난도가 높은 운을 찾아내려 애쓰다 좋은 단어들을 배우기도 했다.

어떤 작가는 새로운 단어를 접하면 놓치지 않기 위해 늘 수첩을 들고 다닌다고 한다. 수첩을 늘 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나는 머리맡에 몇 권의 읽을거리가 있으면 위안을 받는다. 고 이윤기 작가를 아직도 좋아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단어에 대한 적확한 쓰임새와 말에 대한 그의 사유를 배울 수 있어 좋다. 

작가는 우리말의 기억 전달자들이다. 많은 작가가 공들여 발굴해낸 아름다운 우리말을 그들의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박경리 작가의 <토지>는 경상도 토박이말이 좋아서, 최명희 작가의 <혼불>은 전라도 토박이말이 살아 있어 선택한 읽을거리다.

미주 지역의 작가들이 한글로 작품을 쓰면, 본국의 문단에서는 간혹 미국에 살면서 영어로 써야지 왜 한국어로 쓰느냐고 변방인 취급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는 지극히 잘못된 생각이다. 해외에 사는 작가들도 우리말과 문학의 다양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믿는다. 영어로 쓰고 싶을 땐 영어로 쓰지만, 어디에 살든 한국어로 작품을 쓴다는 것이 왜 비난받을 일인가? 

그런 논리라면 일제 치하, 일본에서 대학을 다녀야 했던 윤동주도, 정지용도 일본어로 시를 썼어야 하지 않겠는가? 헤밍웨이도 쿠바나 스페인에서 지낼 때 스페인어로 작품을 쓰지 않았다.

한글날에 즈음하여 한글학교에서도 기념행사를 많이 하고 있다. 세종대왕과 한글 창제에 대해 알기, 한글 지킴이 주시경 선생에 대해 알기, 예쁜 손글씨 쓰기 대회, 글쓰기 대회 등이 그 예다. 

학생들과 대화해 보면 어느 때보다 한글을 배우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에 묻혀 사는 우리도 한글날에 즈음하여 우리의 언어 습관을 되돌아봤으면 한다.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영어 단어를 마구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 후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하는지... 말을 잊지 않아야 민족의 얼을 간직할 수 있다. 또한 부지런히 읽어서 우리말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인터넷 기사를 접하면 유행을 따라잡기 어려운 줄임말이 난무한다. ‘세젤예(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 ‘찐(진짜)’ ‘쌤(선생님)’ ‘꿀잼 (완전 재미있다)’ ‘갈비(갈수록 비호감)’. 줄임말 뿐만아니라 은어도 많다. 이러다간 우리말을 읽고도 그 의미를 모르는 일이 빈번하지 싶다. 

얼마 전, 꼰대(kkondae)란 말이 영국 BBC 페이스북 계정에서 ‘오늘의 단어’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갑질, 재벌에 이어 꼰대가 영어에서도 쓰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유행어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생소한 이런 단어들이 언중들 사이에서 계속 사용된다면, 언젠가 국어사전에도 오를 것이다.

사회관계망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순우리말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어대사전에 공식적으로 오르지 않은 단어가 많다. 바다를 뜻한다는 ‘아라’도 그중 하나다. 바다라는 말 자체가 순우리말인데, ‘아라’는 바다의 고어라는 설이 있다. 

내일의 순우리말이라는 ‘올제’, 사랑이란 뜻이라는 ‘다솜’도 아직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초아, 예그리나, 온새미로 등 이 밖에도 많은 말들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중에는 어떤 이가 순우리말로 쓰고 싶어 고안해 낸 것도 있지 않나 싶다. 

이런 옛말들이 다시 빈번하게 쓰이고, 순우리말이 맞다면 하루빨리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등재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처음 단어들로 돌아가 보자.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이글거리는 숯불을 일컫는 잉걸, 안개비와 이슬비 사이의 가는 비는 는개, 나무 꼭대기의 가지를 나타내는 우듬지, 나무나 풀에 내린 눈같은 된서리는 상고대다. 개치네쒜는 재채기를 한 뒤에 내는 소리로 이 소리를 외치면 감기가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난다고 한다. 영어의 “ Bless you!”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순우리말이다. 즐겨 사용해 보고 싶다.

마침 누가 재채기를 한다. “개치네-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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