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희 시인(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회장)
눈 없는 사람
혹시 죽어본 적 있나요
유감입니다, 아, 미안해요
난 내 앞의 길을 믿지 않거든요
매일 시간을 태운 배는 떠나가고 멀어지고
다시 빈 배에 죽은 자의 시간을 싣고 옵니다
난 지금 잠시만 살고 있어요
기나긴 날이 계속되거나
기나긴 밤이 계속되어도 별일 아니에요
달이 구름에서 나온 날은
두 눈 없는 비가 한없이 내리거든요
눈먼 사람이 등불 들고 나를 인도해서
달을 타고 강도 함께 건넜습니다
고통을 모르면 고통이 아니듯
누구나 벼랑에 서 있는데 모를 뿐
내 등 뒤도 못 보고
영원한 긴 잠의 시간도 못 보고
그냥
<해 설>
일찌기 일리노이대학의 한 화가는 현대인을 ‘No Exit’(출구 없는 존재)로 그려 전시했다.
현대인은 사회 제도나 시대상황에 갇혀 있으나 의식을 못하거나 출구를 찾을 능력을 상실한 존재로 그려보였다.
이 작품 속에서도 작가는 삶이 곧 죽음인 현대인, 죽음을 의식 못하고 고통을 의식 못하는 불구의 현대인을 회화화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죽음을 의식하고 등 뒤의 벼랑을 보는 깨어있는 자, 즉 눈을 뜬 자가 될 것을 시적 모티프로 구축한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죽음의식을 통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여야 함을 설파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주목된다.
김영호 시인(숭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