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 28일 (일) 로그인 PC버전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2021년 1월 시애틀N 사이트를 개편하였습니다. 열람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2021년 이전 자료들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시애틀 수필-안문자] 안개꽃 사랑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안개꽃 사랑


색색의 꽃들이 저마다 자랑스러운 얼굴로 아름다움을 드러낸 꽃집. 구름처럼 소복이 피어오른 안개꽃 앞에 잠시 멈춘다.

결혼식장은 안개꽃으로 가득했다. ~모두 안개꽃이네~. 너무 황홀해서 신음같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초봄, 해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고 은은한 불빛이 안개꽃을 꿈길같이 비추고 있었다

눈부신 꽃물결은 마치 하얗게 눈이 내린 것처럼 깨끗했다. 신부의 부케도 안개꽃, 들러리들의 꽃다발도 안개꽃이다. 안개꽃을 좋아하는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결혼식장안 가득 안개에 감싸인 안개꽃 무지개는 봄날 밤의 낭만을 한껏 부풀리고 있었다

다른 꽃들을 위해 겸손히 조연의 역할을 하던 안개꽃들이 모처럼 주인공이 되어 살랑살랑 수줍은 미소로 사방에 기쁨을 전한다. 신부의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한 아름의 안개꽃을 나에게 주었었지. 그날의 신부도 안개꽃처럼 깨끗하고 예뻤다.

안개꽃을 화병에 꽂는다. 앙증맞은 작은 송이들이 어울려 하늘하늘 레이스를 수놓아간다. 안개꽃은 수명이 끝나도 살아 있다. 화려하게 도도하던 장미꽃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맞아. 이미 정호승 시인이<안개꽃>을 그렇게 읊었지.
 
<얼마나 착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깨끗하게 살았으면/ 죽어서도 그대로 피어있는가/ 중략,
너는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똑 같구나/>
 
안개꽃은 어떤 색의 꽃과도 잘 어울린다. 심지어 푸른 이파리하고도 어울린다. 아니다. 안개꽃 때문에 다른 꽃들이 더 돋보인다. 안개꽃과 함께하면 꽃들이 더 청초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래서 마치 다른 꽃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안개꽃은 언제나 주연을 살리는 조연이다. 주인공인 꽃이 다소 맥없이 보여도 안개꽃과 어울리면 생기가 나고 충만해진다

안개꽃은 예쁜 꽃이나 소박한 꽃이나 따뜻하게 껴안는다. 그처럼 안개꽃은 너그러운 꽃이다. 다른 꽃들과 함께 있을 땐 꽃들의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듯 없는 듯 다소곳하다

꽃꽂이 손길은 언제나 안개꽃을 조연으로 만들어주지만 불평이 없다. 안개꽃의 꽃말은 ‘맑은 마음, 깨끗한 마음’이라지. 그러나 ‘사랑의 성공’이란 꽃말이 가장 알맞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으면 탁자위의 안개꽃은 속삭이는 것 같고, 슬픈 사람과 함께 있으면 한숨짓는 것 같다. 행복할 때나 슬플 때,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는 표정이 된다.

안개꽃은 신부의 부케에도, 식탁위의 장식에도, 환자를 위로하고, 생일을 축하하는 꽃다발에도, 사랑을 고백하는 꽃바구니에도, 어머니 날의 코사지에도 그 날에 알맞은 표정을 짓는다

안개꽃은 순결한 신부의 너울같이 행복하다. 아침 햇살에 피어난 새싹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맑은 아침의 안개 같은 엄마의 손길이다. 착하디 착한 안개꽃, 그래서 나는 꽃 중에 안개꽃을 제일 좋아한다.

간혹 누구하고나 차별없이 함께 어울리는 안개꽃 같은 사람이 있다. 신영복 교수의 글에서처럼 ‘사랑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럿이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고. 한 송이의 장미꽃이 아니라 함께 핀, 함께 어울리는 안개꽃’ 이라고.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어도 혼자서는 빛을 내지 못한다. 수수한 안개꽃처럼 주위를 받혀주고 감싸주어야 비로소 그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나.

작은 송이들이 모여 따뜻한 사랑이 되듯, 작은 마음들이, 작은 기쁨들이 엄청난 슬픔을 견디게 하며 일어서게 하는, 작지만 큰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한 사람은 남에게도 너그럽지 못하다 하였거늘. 안개꽃에게 배운다. 송이 송이들은 연약하지만 자신에게도 너그러워 최선을 다해 함께 피어난다. 다른 꽃들을 애틋하게 보듬어주기 위해 언제나 준비되어 방긋방긋 웃는다.

자기의 공은 숨기고 다른 사람들이 더 잘 보이도록 몸을 낮추는 사람, 다른 사람이 빛나도록 뒤에 숨은 사람이 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손해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착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엔 갈등도 분열도 없을 게다. 더더욱 싸움 같은 건 없을 거야. 삿대질하며 붉어지는 험악한 얼굴은, 그런 순수한 얼굴이 있는지도 모를 게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며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미워하는 일도 없을 텐데

안개꽃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엔 마주보며 착한 아이처럼 언제나 웃을 거야. 내가 먼저 저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두리번거리다가 마주치며 또 웃을 테지. 그렇게만 된다면 아, 그렇게만 된다면 미움이나 질투심이 사르르 안개 걷히듯 말갛게 변화되는 세상이 되겠건만.

못마땅해도 참고 이해하면 ‘같이 가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될텐데. 나만 알고 상대를 우습게 여기는 마음 좁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안개꽃의 포용력이 새삼 그리워진다. 아, 나도 안개꽃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애틀지역 한인 문학인들의 작품을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분류
Total 32,130 RSS
List
<<  <  688  689  69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