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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수필-안문자] 크리스마트 트리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크리스마스 트리


창고에서 나무를 꺼냈다
플라스틱 나무는 힘없이 기우뚱대다가 기지개를 펴듯 부스스 잎을 떨군다. 나무는 빛 바랜 내 마음 같다. 젊은 시절엔 아이들과 함께 크고 잘생긴 생나무의 풋풋한 향기를 맡으며 들뜨곤 했었는데. 울컥, 콧등이 매워지다가 쿡쿡 웃음이 난다어머니의 트리가 떠올라서다

12월이 되면 어머니 방에도 꼬마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곤 했다. 우리들이 버리는 장식품들을 슬그머니 모아 두었다가 빼곡히 달아놓아 좀 우스꽝스러웠건만 어머니는 상기된 얼굴로 예쁘지? 하시곤 했다. 형제들은 ‘엄마의 귀여운 트리’라고 했다. 하늘나라에도 어머니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을까?

해마다 감사절 다음날이면 눈부시고 화려한 작은 등들이 수없이 반짝이며 온 동네를 밝히는 집이 있다. 마치 무대장치를 끝낸 후 막이 올라가듯 성탄절의 온갖 장식들이 그 부유한 집을 꾸며놓아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루돌프 사슴들이 이끄는 수레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실어 나르는가 하면, 작은 천사들이 노래를 부른다. 성탄 트리에는 오색 전등이 깜빡인다. 현관으로 이어지는 길가에도 불빛은 쉬지 않고 깜빡인다. -! 탄성이 절로 나왔다. 장식이며 전기세, 비용이 이만저만 아닐 텐데

금년엔 언제 켜질까? 해마다 기대에 차서 깜짝 쇼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일까? 아무리 기다려도 깜깜 절벽이다.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저런! 몇 십 년 동안 이어오던 크리스마스 장식은 불행해진 부부의 이혼으로 끝나고 말았다니. 섭섭한 마음은 슬그머니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정신이 깃들지 않은 장식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집 둘레를 에워쌌던 수 만 개의 꼬마 등이 아우성치듯 반짝이다 떨어진 별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타샤의 정원>이란 책을 쓴 동화 작가에겐 또 하나의 책 <타샤의 크리스마스>가 있다. 책에는 일년 중 12월이 가장 기쁜 달이고 크리스마스는 가장 성스럽고 의미 깊은 날이라고 쓰여 있다. 100세를 바라보던 타샤 할머니의 즐거움은 강림절부터 시작된다.

일년 동안 자기를 사랑해준 가족과 친구들, 키우고 있는 동물들, 그리고 인형들에게까지 선물을 차근차근 준비한다. 정원에서 나무를 골라 세우면1858년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장식품들을 정성스럽게 나무에 단다. 타샤 할머니가 해마다 만드는 전설 같은 크리스마스트리는 유명하다. 그녀의 크리스마스는 오로지 베풀고, 나눔의 크리스마스였다.

아이들이 공부할 때만해도 크리스마스는 축제 분위기였다. 부모님과 함께 육남매 가족이 가까이에 모여 살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꼬맹이들은 호기심 가득 찬 눈을 반짝이며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쌓여있는 선물 주위를 맴돌고 은은한 촛불 사이로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밀린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가슴 설레던 찬송과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는 우리 모두에게 뭉클한 감사와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그랬다. 우리의 크리스마스트리도 희망의 나무였다. 악기들이 총 동원되어 촛불이 사그러들 때까지 캐롤을 불렀는데. , 그리운 그 시절.

아이들이 없으니 크리스마스트리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떠난 첫 해엔 나무를 세워 놓고 며칠을 그냥 지내다가 리본만 달았다. 그 다음해엔 은줄만 걸었다. 그 다음해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나무를 세워놓았다. 오색 전등을 골라놓는다. 흰색은 순결한 예수그리스도와 부활을 상징한다지. 파랑, 동방박사가 파랗게 빛나는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갔고, 노랑은 아기 예수께 드린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의미한다고. 빨강은 나를 위해 흘리신 주님의 보혈이구나. 그렇지, 녹색은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정성스럽게 꾸민 크리스마스 트리에 성탄의 참다운 의미가 다 들어있는 것 같다

타샤 할머니처럼 크리스마스트리는 가족과 이웃을 위한 사랑이다.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다시 세상을 향해 반사시켜서 어둠을 밝히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리라.

빛 바랜 나무처럼 휘청거리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나간 추억을 붙들고 쓸쓸해하던 부끄러운 나. 타샤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나의 트리도 사랑의 빛이 멀리 퍼지는 위로의 나무가 되도록 정성스럽게 만들어야겠다.

나는 낡은 나무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나무 꼭대기엔 큰 별을 달아 빛을 찾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도록 해야지. -밀려오는 밀물처럼 나의 가슴이 설렘으로 출렁인다. 초라했던 나무에 생기가 돌았다. 파랗게. 영원한 생명처럼 아주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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