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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삶-김동진 목사] 종교개혁에 부치다



김동진 목사 (루터교 은퇴 - 미주 크리스천 문인 협회원)
 
 
종교개혁에 부치다
-498주년을 맞아
 
 
이번 주일(1026~31)을 종교개혁 주일이라 한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15171031일 비텐 베르크 대학 교회 정문 앞에 면죄부(免罪符)에 관한 95조 논제라는 항의문을 붙인 날이기 때문이다.

개혁과 혁명은 다르다. 혁명은 처음부터 ‘엎는 것’이지만 개혁은 ‘뜯어 고치는 것’이어서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해 온전케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마틴 루터를 종교 개혁자라 부르는 이유도 뒤집기 위한 의도에서 종교개혁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믿자는 데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로 믿으려면 우선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알자, 힘써 알자’고 했다(호세아 6:3).

그럼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은 무엇일까. 성경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 거룩함이라고 했고(데살로니가전서 4:3).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했다(베드로전서 1:16). 한문으로 성경(聖經)은‘거룩한 책’이란 뜻을 갖고 있지만 원어의 뜻은 ‘구별시키는(γιαζω)책’이다

이 구별은 제한적 존재였던 우리를 해방시켜 영생의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베드로전서에는‘찬송 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했다’고 했다

이 같은 복음에 힘입어 한국 교회사 130여년 동안 한국 교회가 한때나마 꿈과 소망을 안겨줘 사회적으로 공신력을 갖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기독교도를 믿어 주었던 것이다

도덕적으로 일반인보다 앞서 있음을 실제 생활로 입증해주고 있던 것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공신력이 떨어지고 있다. 교회의 도덕적 타락과 물량주의적 경향 때문이다.

이처럼 기독교에 대한 거부 경향은 역사적 경험상 결코 무시할 일이 아니다. 교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곳으로 빨리 돌아가야 하고, 받은 대로 은혜와 축복을 주는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일부이긴 하지만 개신교 성직자가 금전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벌금을 내야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감옥에 가있는 분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 개신교가 중세기 종교개혁 직전의 로마 가톨릭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이처럼 개신교가 타락하게 된 것은 한국 교회의 목회 성공 여부가 영력이나 그리스도 뜻의 추구와 실현을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예배당 크기와 교인 수, 헌금 액수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일반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교회가 물량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특히 장로를 선출할 때 기복신앙 일변도로 치우쳐, 신앙보다 헌금의 과다와 사회적 신분 지위를 더욱 고려하는 분위기나 사례비를 많이 받는 목회자가 유능한 교역자로 인정받고 있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교회들이 앞다퉈 대형 예배당과 교육관, 기도원, 수양관 등을 짓는 일에 몰두한 관계로 영적 각성을 위해 모여야 할 부흥 사경회가 건축 등의 특별사업을 위해 헌금을 모으려는 부흥회로 변질된 지도 오래됐다. 이 같은 물량주의적 풍조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참 종교개혁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고 있다.

이 시대가 바라는 교회 개혁은 내가 믿는 것만큼 실천도 따라가 맺어야 할 열매까지 맺는 것이다. 그 열매란 바로 사랑의 열매(고린도전서 13:4~7),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22~23), 빛의 열매(에베소서 5:9)이다. 종교개혁 498주년을 맞아 온 교회가 이 같은 열매들로 채워져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회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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