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벽봉 시인
인생의 곤지
이 작은
제비꽃 앞에 와서
한나절을 앉아 있다.
물속 같은
고요에 몸 담근다.
하늘이
해를 끌고 온 하늘이
와서 채색(彩色)한 게 분명하다.
할멈은 와서
작은 인생의 곤지를
찍어 놓는다.
온 길은 아득하고
갈 길은
지척에 그림자로 와 있는데
오늘은
꿈 조각 모아
손거울 하나 만들어
그의 손에 쥐어 줄까
그리고
은밀한 말 한마디
빚으로 치부해 놓는다.
<해설>
좋은 시는 향기가 있다.
그 시의 향기는 시를 쓴 작가의 향기이다. 그의 선하고 따뜻한 인간적 온기의 향기이고 진솔하고 소박한 정서의 향기이다.
그리고 그 작가의 언어와 표현이 담백하고 은밀한 데서 나오는 향기이다. 이 작품 속에서도
시인은 한 작은 제비꽃 앞에서 한나절을 바라보며 그 꽃의 “물속 같은/고요에 몸을 담근다” 꽃에 대한
애정이 깊고 그 꽃과 일체가 된 감성을 수채화처럼 그려내어 향기를 준다.
그는 그 꽃을 자기 부인인
“할멈”으로 은밀하게 투영시켜 그윽한 사랑의 온기로 덥혀준다. 특히 “꿈 조각 모아/손거울 하나 만들어” 할멈의 손에 쥐어 주어 젊은 시절 제비꽃처럼 고왔던 옛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소박한
애덕의 심성을 표출시키고 있다.
좋은 시는 직설적이지 않고 수줍은 듯 은밀하고 고요한 언어 표현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목된다. 시가 제비꽃 같다. 김영호 시인(숭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