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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영 머리로 그리는 그림-6] 삶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권선영 화가(S미술학원 원장)


에드워드 마네 작약시리즈에는 인생의 신중함 담겨 있어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중의 한 명인 에드워드 마네(Édouard Manet) 가 그린 작약시리즈를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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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마네의 '꽃병 속의 작약들'>

제가 언급하고 싶은 그림은 그의 정물화 연작 중의 하나인 ‘꽃병 속의 작약들’ 입니다.

전체적인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화사하게 밝은 꽃잎들이 돋보이는 이 정물화는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거 같은 평범한 정물화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인생이 담겨있는 다소 신중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의 봉오리,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화사하게 만개한 작약꽃송이들, 줄기가 꺾인 듯 꽃병 아래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꽃송이들, 바닥에 흩트러진 꽃잎들까지…  

인생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함유하고 있는 진지한 의미가 담겨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가 병마와 싸우느라 대작을 그리는 대신 꽃이나 과일 주변에 있는 정물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질병의 악화로 51세에 죽음을 맞이했던 근대화의 아버지, 마네.  

‘삶과 죽음’ 이라는 주제는 병과 치료과정에서 고통과 싸우면서 본인의 삷을 되돌아볼만한 소재가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그림의 은유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인생의 과정을 채우는 것이기에, 마음이 무거울 때나 갑갑할 때 이 작품을 보면서 뭉클해지는 마음으로 감수성을 되새기는 원동력이 되는 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마네는 근대화의 새 물꼬를 튼 예술가

현대미술의 거장들로 피카소, 세잔, 칸딘스키, 뒤샹 등이 자주 거론되지만, 근대화의 새 물꼬를 튼 실질적 역할의 예술가인 마네가 있었기에 현대미술이 가능하지 않았나 봅니다. 

에드워드 마네가 살았던 19세기의 프랑스는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산업이 발달하고 정치적으로도 소요가 끊이지 않는 등 프랑스 사회는 격변하고 있었지만 사회 모든 분야가 그 변화 속도를 따라잡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요. 

미술도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나 성경 속의 이상적인 인물들이 가득한 아카데미즘 미술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대였습니다. 설사 여성의 나체화를 그린다 해도 신화 속의 인물로 포장해야했으므로 인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숭상적인 분위기를 섬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와 보수적인 파리 예술계에서 마네는 이단아 취급을 받았습니다. 고전적인 아카데미 풍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야외에서 햇빛과 그늘이 주는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해서 캔버스에 옮기는,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지요. 

더군다나 그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풀밭 위의 점심' 은 당시 외설적이라는 지적을 받으며 비판받던 작품입니다. 정장을 차려 입은 파리의 상류층 남자들과 대비되는 그림 속 나체 여인의 도발적이고 당당한 시선은 당시 남성과 이 작품을 보고 있는 모든이들에게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야기 속의 인물을 재생하거나 눈앞에 보이는 인물을 그려낸 초상화가 목적이 아닌, 작가가 주체가 되어서 이미지를 통한 주제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작품의 시작했다는 자체가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듣고 있고, 무엇을 배우고 있고, 무엇을 적용하고 있을까요? 내일이 기다려지고 오늘 하루가 기대되는 그런 삶을 살고 계십니까?

인생은 수 많은 도전과 변화 남겨

순간의 소중함과 인생의 새로움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함에서 시작되기에 앞으로의 남은 인생은 수 많은 도전과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일을 위한 계획으로 흥분되고, 열심히 살아온 오늘을 되짚어봅니다. 하루하루가 도전이 될지라도 상황에 좌지우지하지 않는 태도를 배워갑니다. 신명나는 과정이지요.

두려운 건 그 어떠한 어렵고 험난한 상황이 아니라 좌절하는 나의 태도입니다. 삶의 태도는 내가 먼저 변화를 겪어야 자신감과 확신이 생깁니다.

그 변화는 기준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기준을 감정에 두느냐 기준을 가치에 두느냐...
감정(feeling) 과 가치(value)를 구분하여 아는 자는 인생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면 된다/기분 좋은게 최고다---> 감정에 기준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실이나 판단이 옳다 그래서 그걸 따르려고 산다---> 가치에 기준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패스트푸드를 비롯한 달고 강한 양념맛이 맛있다. 건강식은 맛없다. 영양이고 균형이고 상관없고 내 입맛이 원하는 게 최고다--->내 기분에 맞춰진 감정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비만을 피하고 균형있는 영양가 섭취를 통해 내 몸을 길들여 간다---> 건강이라는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분야를 알아가는 것도 귀찮고 공부도 싫고 퍼져 사는 게 좋다---> 편안함에 안주하고픈 내 기분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시간을 아끼고 이용해서 알아가고 배워가는 기쁨을 알고 지속적인 도전장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교육의 중요함과 효율성에 가치를 둔 삶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등등 수많은 예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 두가지 삶의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정대로 이끌려 살것인가, 가치대로 맞추어 살것인가.

마네의 이 정물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물들을 표현한 하나하나의 붓터치가 그다지 섬세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세대가 그의 그림이 인상파적 선구자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작 본인은 그 당시 인상파그룹 전시에 소속되는 것을 거부했었던 작가입니다. 

정교한 묘사력과 사진과도 같은 뚜렷한 표현력을 우수하게 평가하던 19세기 당시 고전적인 아카데미적 미술사조에 순응하지 않으면서도, 어디까지나 본인이 바라보는 것을 솔직히 표현하고자 주력했던 그의 작품과 삶을 통해 그의 가치관이 보여집니다. 

어느 분야든 개척자의 자세는 남다르게 보여집니다. 어느 한 단체를 업고서 혹은 특별한 힘을 내세워서가 아닌, 설사 남들이 동행하지 않더라도 진실과 가치를 찾고 인정하며 나만의 인생을 가치있게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게 매력적인 인생이 아닐까 라고 마네의 정물화를 다시 바라보며 새삼 생각해봅니다. 

<권선영의 머리로 그리는 그림> 시리즈를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http://www.seattlen.com/bbs/board.php?bo_table=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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