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 27일 (토) 로그인 PC버전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2021년 1월 시애틀N 사이트를 개편하였습니다. 열람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2021년 이전 자료들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시애틀 수필- 정동순] 바특한 관계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바특한 관계

 
오늘 모임에서 어쩌다 강된장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인기 절정인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진행자의 말투를 흉내 내보았다.

된장을 고추장과 섞어서 쌈장을 만들잖아유. 어렸을 때 엄니가 가마솥에 밥을 지을 때 밥솥에 넣어두면유 밥물이 들어가서 된장처럼 짜지도 않고 참 맛있었슈.  풋고추를 강된장에 분질러 넣고, 텃밭에서 기른 상추에 밥을 싸먹으면 반찬 없는 여름에도 살이 올랐지유. 말 그대로 밥도둑이었지유.”

그러자 뒤질세라 또 다른 이가 쏟아낸다.

된장은유, 가능하면 시골된장이 좋은디, 요즘은 대부분 사먹잖아유.  간혹 짙게 변색이 된 것도 있는디, 맛에는 이상이 없으니 걱정할 것 읎어유. 된장 네 스푼, 고추장 한 스푼, 풋고추 두어개, 두부는 작게 깍둑썰기로 하구유. 호박, 버섯이나 쇠고기 갈은 것이 있으면 넣어도 좋겠쥬. 파도준비하고. 원하는 재료를 늫거나 빼두 돼유. 찜통에 찔 때는 물은 안넣어도 돼유. 몸에 좋다는 양배추랑 같이 찌면 일석이조이겠쥬? 불에 직접 올릴 때는 물을 자작하게 부어서 바짝 끓여야돼유.”

누군가 자신의 추억까지 보탠다.

부산에서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첫 직장에 다닐 때였어요. 멀리 용인으로 가서 도시화되어 가는 어느 변두리 시골동네에서 자취를 하게 됐어요. 저녁에 퇴근할 무렵이면 늘 피곤하고 배가 고팠지요. 대문을 들어서면 주인집은 마루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할 때가 많았어요. 제가 대문을 들어서면 주인 아주머니는 내게 손짓하며, 얼른 이리와, 같이 밥 먹어, 하며 부르곤 하셨어요. 고향 인심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지요. 고향에선 밥 먹을 때 사람이 오면 그냥 안 보내잖아요. 속으로는 거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못이기는 척 아주머니네 두리반에 끼어 앉아서 밥공기를 맛나게 비우곤 했지요. 그때 강된장 맛을 알게 되었어요. 작은 뚝배기에 된장찌개라고 하기에는 낯선 걸쭉한 된장이 들어 있었어요. 다슬기 살이나 다진 고기 같은 것이 들어 있어 밥을 비벼먹거나 쌈에 얹어먹으면 정말 맛있었어요. 혼자서 밥을 먹다가 아주머니네 두리반에 앉아 같이 먹던 밥이니 얼마나 더 맛있었겠어요. 그 후론 강된장은 제겐 잊을 수 없는 아주머니의 인정이에요.”

사실 강된장을 찔 때 꼭 빠지면 안되는 양념이 있다. 이것이 진정한 강된장 고수가 될 수 있는 비법이다. 사람들과 같이 먹던 추억이다. 어떤 이는 섬진강에서 물놀이하며 자라던 어린 추억을 보태기도 할 것이고, 또 누구는 좁은 골목길에서 연탄재 뿌리며 겨울을 났던 추억을 보태기도 할 것이다.

요즘은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오죽하면 혼자 먹은 밥을혼밥이라 할까

하지만 적어도 강된장을 먹을 때 만은 사람들을 불러서 같이 먹어야 한다.  그게 진짜 강된장의 맛이기 때문이다. 방금 딴 싱싱한 쌈채소와 함께 놓인 강된장 뚝배기, 거기에 적어도 숟가락을 서너개는 걸쳐 놓는 게 어떨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강된장. 생각만해도 군침이 돈다.

오늘, 우리는 왜 그렇게 강된장에 연연하며 아득한 추억들을 불러냈을까. 사실 오늘날 우리는 옛날보다 더 편리한 기구들을 쓰고,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집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만큼 그와 비례해서 더 행복한가 생각해본다

풍요로울수록 우리가 잃어 버리는 것은 없는지? 가난했던 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난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었던 것들도 분명 있었다. 단순하고 소박함 속에서 나오는 마음들이다. 없는 중에서도 서로 배려하고 살펴주는 인정이 있었다. 이웃끼리 층간 소음으로 원수처럼 지내지도 않았고, 고독사나 혼밥이란 말이 없었다. 스스로 세상과 인연을 끊는 비율도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물을 자작하게 붓고 바특하게 끓인다는 강된장. 사람들 사이도 너무 느슨하지 않게 좁은 장소라도 자주 모이고, 서로 비교하는 것 없이, 흉허물없이 있는 그대로 즐기는 바특한 강된장 같은 관계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모임이 파하고 모두들 돌아간 뒤에도 내 머릿속에는 계속 강된장이 맴돌고 있었다. 맛있는 강된장을 생각하며 만면에 희색을 띠고 실없이 웃고 있는 나를 누군가 보았다면 자못 우스웠을 것이다. 다음 모임에서는 오랜만에 다슬기 살을 다져 넣은 강된장을 만들어야겠다

**시애틀지역 한인 문학인들의 작품을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분류
Total 32,130 RSS
List
<<  <  766  767  76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