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월 01일 (토) 로그인 PC버전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2021년 1월 시애틀N 사이트를 개편하였습니다. 열람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2021년 이전 자료들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이효경의 북리뷰] 불공평하기만 한 무거운 삶의 짐은 누구 책임인가



이효경(UW 한국학도서관 사서)


카밀로 호세 셀라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미국에 살면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다면 누구든 총기 사고의 희생자가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사는 일일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어느 개인의 분노가 총기와 결합해 엄청난 피해자를 쏟아 낸다.

이렇듯 총기 사고에 대한 두려움은 강진의 위험을 안고 있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사는 것보다도 위협적이고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총기사고에 가슴을 쓸어 내리는 일은 습관이 된 지 오래고, 이런 현실이 심기를 적잖이 거슬리기 시작한 지도 오래다

그런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하는 것은 사고의 기저에는 항상 불행한 한 인간의 삶이 어둡게 깔려있다는 사실이다.    


총기사고 단골 주범인 아메리카 대륙의 이웃을 이해하도록 강요 


스페인 현대 문학을 대표한다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문학을 통해 이베리아 반도로 이동해 보고 싶었던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고, 엉뚱하게도 총기 사고의 단골 주범인 아메리카 대륙의 내 이웃들을 이해하도록 강요했다.
 
책의 주인공은 살인자이고, 소설은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파스쿠알의 살인 경력은 잔인하게 화려하다. 동네 친구 사카리아스를 칼로 찔러 상해를 입히고, 아내의 정부였던 파코를 죽이고, 마을의 지주 돈 헤수스 백작을 살해하며, 급기야는 어머니의 목덜미에 칼날을 쑤셔 넣는다. 이렇듯 소설은 도발적이고 폭력적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 없는 한 인생의 철저한 비극만을 이야기한다.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이 소설에서 파스쿠알의 간절한 호소의 음성이 가늘지만, 주목을 끈다. 감옥에서 찬찬히 써 내려간 그의 수기를 읽고 있노라면, 죄를 용서받기 바라는 파스쿠알의 마음이 일관적이게 나타난다.

죄를 인정하기엔 타고난 운명이 너무 부당하지 않나요?
 
교수대에서조차 파스쿠알은 자기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침을 뱉으며 한 인간이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천박한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건 그토록 살기를 바랐던 파스쿠알의 간절한 심정의 토로였다. 그는 단순히 용서를 구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변호하고자 했다. 파스쿠알은 자신의 죄를 용납하고 인정하기에는 타고난 운명이 너무 부당하지 않으냐는 반감의 두꺼운 딱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변호는 간단하다. 삶이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은 너무도 악했고 그런 본능에 저항하기에 그는 너무도 연약했다는 것이다.
 
범죄를 질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그늘에는 천박하고 폭력적인 부모가 있었다. 파스쿠알의 아버지는 별다른 이유 없이 성질이 나면 파스쿠알과 어머니를 구타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못된 버릇을 고친다면서 같이 달려들어 되받아쳤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지한 어머니를 담고 태어났다
 
아버지는 난산 후 힘들어하는 아내에게까지 혁대를 휘두르는 지극히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어머니 역시 거친 입에 난폭하며 술을 좋아하는 무지한 사람이었다. 파스쿠알은 재수 없게도 부모로부터 이 모든 결점을 물려받았다. 파스쿠알의 표현을 빌자면 어떤 사람들은 꽃 길로 가도록 운명 지어진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과 같이 엉겅퀴와 선인장 가시밭길에 던져진 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불우하고 가난한 파스쿠알에게 운명은 그를 더 혹독한 세계로 몰아세운다. 여동생 로자리오는 일찍부터 돈과 남자를 쫓아 집을 나가고, 바람난 어머니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다. 이에 분노한 아버지는 어머니가 배다른 동생 마리오를 낳는 동안 살기가 등등해지는데, 이를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은 벽장에 그를 가둔다

며칠을 그렇게 지내고 난 아버지는 혀가 절반쯤 빠진 채 주검으로 발견된다. 집안의 온갖 저주를 받고 태어난 병약한 동생 마리오의 운명도 10세를 못 넘기고 기름통에 거꾸로 빠져 죽어 불행한 가족을 더 불행하게 했다.
 
아비규환의 가족사를 목격해야 했던 주인공 파스쿠알은 자신에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행복한 순간에도 악마에게 사로잡힌 듯한 기분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림자처럼 그를 쫓아 다녔다.
 
아내는 결혼 사흘 만에 말에서 떨어져 첫 아이를 유산한다. 슬픔을 딛고서 겨우 갖게 된 두 번째 아이도 10달이 채 지나지 않아 바람처럼 잃는다. 그 사이 파스쿠알의 폭력은 서서히 그 전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신경을 거슬린 친구를 홧김에 칼로 찌르고, 아내를 유산시킨 말의 가죽에 사정없이 칼침을 꽂는다.
 
이후의 삶은 가히 더 비극적이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달래고자 파스쿠알은 새로운 곳으로 떠났다가 2년 만에 집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그에겐 부정한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내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뱄고, 죄책감과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결국 어처구니없게 죽는다. 격분한 파스쿠알은 아내의 정부를 찾아 살인을 감행한다. 이쯤 되면 파스쿠알의 인생은 고삐가 풀린 망아지가 되었고,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었던 인생의 불행의 사건들이 순차대로 진행되는 일만 남은 듯하다.

역설적으로 감옥만이 불행으로부터 구원해줄 보호소
 
감옥에 붙잡혀온 파스쿠알은 이곳만이 자신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해 줄 보호소와 같다고 생각하기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인생은 그에게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모범수였던 파스쿠알은 형기를 다 채우기도 전에 석방의 기회를 맞고, 세상을 향해 다시 열린 교도소의 문은 모든 사악함 앞에 파스쿠알을 무방비 상태로 다시 방치한다.
 
그 이후 파스쿠알의 처참한 삶은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자신의 모친과 백작을 살해하고 사형수가 되어 다시 감옥으로 돌아오고, 결국 교수대에서 최후의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 만이 죄악으로부터 탈출시키고 해방시키는 삶이 되다 
 
죽음만이 파스쿠알을 진정한 의미에서 죄악으로부터의 탈출시키고 해방해 주었다.   
 
저주를 받아 마땅한 파스쿠알을 단죄하려니, 마지막까지 죽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그의 모습이 애처롭게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의 죗값을 논하기 전에 그가 겪어야 했던 불행한 태생과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무거운 삶의 짐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연민의 마음이 든다

물론 한 인간의 범죄를 가볍게 생각하거나 모든 악한 행위를 운명론적으로 해석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러나 파스쿠알이 파스쿠알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자신도 어떻게 제어할 수 없었던, 선택을 훨씬 뛰어넘어선 타고난 유전과 환경적인 요인을 간과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세계의 갑부이자 성공한 사업가 빌 게이츠도 자신이 현재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에는 어린 시절의 윤택했던 가정 형편과 남보다 일찍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던 환경 덕이라고 종종 말하곤 한다. 겸손의 말처럼 들리지만 냉혹한 현실이자 지극히 당연한 사회 현상에 불과하다.
 
훌륭한 음악가의 집안에서 재능 있는 음악가 2세가 탄생하고 축구 선수를 아버지로 둔 아들이 국가 대표 선수가 되듯, 아버지에서 아들, 어머니에서 딸, 조부모에서 손자 손녀로 이어지는 유전자의 힘은 혈혈단신 개인의 노력보다 강력한 것임을 현실에서는 종종 목격하기 때문이다. 타고난 것뿐만 아니라 가족을 통한 인맥과 재력이 한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누구도 자신의 성공이 온전히 자신 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다른 인생의 길을 부여받은 것은 아닌지?
  
인간은 나면서부터 다른 인생의 길을 부여받는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를 통해 운명의 틀은 어느 정도 이미 주조되었다. 당연하지만 공평하지 않기에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기회의 평등을 부여한다 해도,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유복하고 평탄한 가정에서 자란 인간과 그렇지 못한 척박한 환경에서 거친 유전자의 결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인간성은 같을 길을 걷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 길을 걷도록 태어난 자가 가시밭길에 태어난 자를 함부로 비난할 수 없고 비난해서도 안 되는 이유를 딱히 누가 우리에게 말하지 않아도 침묵 속에서 조용히 터득하게 된다.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로 가시밭길에 태어난 자의 폭력과 비뚤어진 삶에 연민을 느끼는 것이 당연할 수 있고, 그들이 걸어온 가시밭길을 걷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양심의 문책을 달게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질문이 혜택받지 못한 이들에게 돌려야 할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지는 게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어찌 내 이웃의 폭력과 분노가 내 이웃만의 잘못이겠는가? 그의 삶에 렌즈를 가까이 대고 들여다보면 부모, 형제자매, 조부모, 이웃, 결국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불행한 인간의 삶에 일조를 한 사회적 공범이던가 그 불행의 유전자를 받은 불행한 일원 중의 하나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우리 안에는 씻겨져야 할 더러운 유전자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을 지우고 없애는 방법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불편한 진실을 극복하기는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어려워 보인다.

하루가 멀게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미국 내 총기 사고를 보면서, 점점 포악해 지고 거칠어져만 가는 인간들의 삶을 바라보며, 인간이 인간을 정죄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싶다

차라리 누구든 그럴만한 삶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겠지 라고 이해하는 도리를 선택하고 싶다. 삶이 그들을 혹독하게 시험하고 좌절시킬 때 얼마나 괴로웠을지, 내가 그 상황에 있었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연민과 동정의 마음을 갖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진다

심지어 총기사고 같은 부당한 죽음이 어느 날 덜컥 내게 찾아온다 해도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덜 억울해할 수 있다면, 누구든 부조리 같은 삶을 살지 않는 자가 이 세상에 별로 존재하지 않기에, 그래서 우리는 지극히 평등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팔 할은 손에 쥐고 태어난 것이기에 현재를 자랑할 것도 없다
 
이 책은 나에게 삶은 운명적이며 우리는 운명에 따라 사는 것임을 옹호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더 겸손하게 돌아보게 한 책이었다고나 할까.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것 또한 내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팔 할은 이미 어떤 형식으로든 손에 쥐고 태어난 것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어떤 위치 어느 곳에 있다는 것조차도 크게 자랑할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그렇기에 작게는 운명의 일부를 나눈 가족의 공동체로, 넓게는 카인의 후예인 한 인류의 구성원으로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의 아픔과 그가 변호하는 이야기를 똑똑히 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크변3746224-large.jpg






분류
Total 32,130 RSS
List
<<  <  718  719  72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