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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장원숙 시인] 인간의 악행은 어디까지?



장원숙 시인

인간의 악행은 어디까지?

30 여년 전 여행지인 독일에서 히틀러의 잔인성을 봤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인간이 인간을 어찌 저토록 잔인하게 죽일 수 있었단 말인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600 만명이라는 유대인을 가스 불에 태워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의 기름을 만들어 썼다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 내 조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도 거의 날마다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였는가 하면, 부모가 자식을 죽여 그 시체를 냉장고에 3 년씩이나 방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냉장고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만 보관하는 곳인데 어린 자식을 죽여 시체를 토막내 넣어두었다니 어찌 사람이, 아니 아버지가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서로 사랑했던 가족일 텐데, 싫다고 죽이고, 변했다고 죽이고, 미워져서 죽이고, 돈 몇 푼에 죽이고, 말 안 듣는다고 죽여서 파리목숨처럼 토막을 내어 쓰레기봉투 속에 집어넣어 유기했다는 사실에 인간이 이토록 무서운 존재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정통성을 살리기 위해 범행을 했다는 명분이라도 내세웠지만 그래도 자기 핏줄은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우리 민족 중에는 이토록 잔인하고 비정한 부모가 있단 말인가?

실향민들을 생각해보자. 남북이 갈려 총칼을 겨누는 앙숙으로 살아가면서 공산주의가 싫어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은 부모 형제와 떨어져,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며, 그리움에 지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같이 먹고, 같이 자고 슬픔이나 기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에 살 수 있음에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자식과 부모가 죽이는 세상이 된 것에 할말을 잃게 된다. 더구나 우리 민족은 부모를 공경하는 동방예의지국이 아니었던가625전쟁을 치르며 헐벗고 굶주렸을 때도 이런 패륜은 없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져 일하기는 싫고 설사 부모라도 남의 것을 빼앗아 놀고 먹는 기생충들이 늘어나 오직 돈의 노예로만 살고 있는 패륜아들이 늘어나고 있는 그야말로 병든 사회가 된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친구인 10 대 여자 아이들을 상대로 성폭행한 뒤 다른 남성들에게 성매매를 시켜 그 돈을 챙기며 사는 거머리 족도 넘친다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신뢰성은 무너져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며 경계해야 하는 사회가 됐으니 그야말로 인간의 위기가 온 것이다.

바벨론의 역사는 피로 강물을 이루었고 노아 방주 때는 물로 인간을 심판했으며,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은 인간의 타락 때문이었다. 신의 마지막 카드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힘없는 약자를 짓밟는 풍토가 만연한 사회에선 그야말로 희망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관계적 존재로 태어났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책무를 타고 태어난 것이다. 너도 살고 나도 살아야 하는 상생의 길이 우리에게 주어진 자세이다.

나를 벗어나 남을 위해 일할 때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그런 사회를 회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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