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돌아온 이재용은 왜 "냉혹한 현실을 봤다"고 말했나
- 21-11-25
글로벌 반도체 업계 상황 목격 후 느낀 '위기감'
삼성 앞뒤로 강적 놓여…'No.1 반도체 기업' 목표
5년 만에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박11일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는 이번 출장에서 '냉혹한 현실을 직접 봤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는데, 이번 대규모 미국 투자를 계기로 양산 시스템과 기술을 확보해 앞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24일 서울 김포공항으로 귀국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 분야에서 큰 투자 결정을 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투자도 투자지만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되니까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다.
이는 역대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액 중 최고인 170억달러(약 20조2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설립을 결정짓고 백악관 핵심 참모들과 면담하며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하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녹록치 않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현실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7.3%(2위)로, 1위인 대만의 TSMC(52.9%)에 크게 뒤졌다. 추격에만 집중해도 힘든데, 올해 초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까지 가세하면서 앞뒤로 강적에 놓였다.
경쟁사들의 투자도 막대하다. 지난 3월 인텔은 총 20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2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으며, 지난 4월 TSMC도 향후 3년 동안 1000억달러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지난 5월 170억달러의 투자 계획만 내놨을 뿐, 공장 입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하지 않으며 실행이 지연됐다. D램 사업에서도 3위 마이크론은 향후 10년 동안 1500억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1위 삼성전자를 추격할 채비를 갖췄다.
이 부회장이 지난 21일 반도체와 세트 연구소인 DS미주총괄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 연구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의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이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며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가자"고 당부한 것도 이런 어려운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 News1 |
결국 이 부회장의 이번 '냉혹한 현실' 발언은 출장을 통해 이 같은 반도체 업계의 상황을 보고 들으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위기감과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조급함, '안주하지 말고 계속 달려가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그는 지난해 6월 화성에서 가진 반도체 연구소 간담회 자리에서도 "가혹한 위기 상황"이라며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있다, 시간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기술 경쟁을 통해 위기를 넘기고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다. 현재 파운드리 사업에서 7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m) 미세 공정 기술을 적용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두 기업은 반도체 칩 생산능력에서 나란히 3나노 제조기술 상용화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현재까지 공개된 업체별 기술 로드맵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TSMC보다 약 6개월 빠른 내년 상반기에 3나노미터 공정을 도입할 전망이다.
양산 라인도 갖추게 된다. 이번에 투자가 완료되면 삼성전자는 기흥·화성-평택-오스틴·테일러를 잇는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생산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현재 애플·퀄컴 등 미국의 대형 고객사들은 TSMC의 파운드리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이번 생산 체계 구축으로 삼성전자는 고객사의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기존의 수요를 대체해 파운드리 시장의 판도를 바꿀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방미 일정으로 이 부회장은 그만큼 해야할 게 많고 부족한 게 많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며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에서,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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