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별세] '육사 동기' 노태우와 전두환…70년 인연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지병이 악화해 별세했다. 향년 89세. 

노 전 대통령의 일생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떼어놓기 어렵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출신인 두 사람은 육사 11기 동기로 1952년부터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육사 생도 시절 방을 같이 썼고,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쓴 '노태우 회고록'에서 자신의 결혼식 사회를 전 전 대통령이 봐주었다'고 썼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자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육사 생도 및 장교단의 '혁명 지지 시가행진'을 주도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박정희 정권과 가까워지며 '정치군인'의 길로 접어든다. 

무엇보다 이들은 군부 내 사조직이자 군부의 정치 개입이라는 폐단의 근원 '하나회'를 앞장서서 결성했다. 전 전 대통령이 주도했고, 노 전 대통령 등 육사 11기가 중심이 됐다. 

하나회는 이후 사실상 '박정희의 친위대'가 됐고,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에서 각각 대통령 경호실 행정차장보와 작전차장보를 지내기도 했다. 

하나회는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암살당한 뒤 같은 해 군사 쿠데타인 12·12 군사반란(12·12 사태)을 주도하게 된다. 

전 전 대통령은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10·26 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었고, 이 지위를 이용해 사건 수사를 총괄하면서 영향력을 키워 갔다. 

하나회 조직을 이용해 군부 요직을 차근차근 점령하던 전 전 대통령은 이후 12·12 사태를 주도했고, 당시 9사단장이던 노 전 대통령이 최전방 부대이던 9사단 예하 1개 연대 병력을 무단으로 동원해 군사반란에 가담시켰다. 이 일로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경상도 출신에 대통령 경호실 작전차장보와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을 지냈다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은 이후 대통령을 거쳐 법정에 서는 궤적도 똑같이 밟는다. 

전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후 노 전 대통령은 민주정의당(민정당) 국회의원과 내무부장관을 거쳤다.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정당 대선후보로서 6·29 선언을 발표해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였다. 이후 제1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직선제 대선에서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전두환 정권의 5·18 민주화운동 폭력 진압 등으로 군부 정권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높았고, 6월 항쟁의 결과 16년 만에 직선제 대선이 치러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36.64%의 표를 얻어 '어부지리'로 당선된다. 

김영삼 후보는 28.03%로 2위, 김대중 후보는 27.04%로 3위였다.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노 전 대통령은 당선되지 못했을 결과다.

집권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전임 전두환 정권과는 다른 정치노선을 추구한다. 토지를 공공의 자산으로 간주하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는 등 진보적인 색채의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자신이 군부 출신인 만큼 5공화국 시절의 군부 독재 문제를 완전히 청산하지는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을 설악산 백담사에 ‘유배’보내는 선에서 그쳤다. 

두 사람은 결국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폭력 진압의 주범으로 지목돼 함께 구속 기소됐다. 혐의는 반란수괴·내란수괴·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이었다. 

1995년 1심 법정에서 두 사람이 푸른 수의를 입고 손을 잡은 채 나란히 선 사진은 유명하다. 

전 전 대통령이 오랜만에 다시 만난 노 전 대통령에게 "자네 구치소에서 계란프라이 주나?" 라고 했다던 일화도 알려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았다. 

전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대법원에서는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 선고가 최종 확정됐다. 

두 사람은 김영삼 정부 말기에 특별 사면됐다. 전 전 대통령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은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추징금을 완납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암 투병 생활을 시작한 이후 별다른 교류가 없던 두 사람은 2014년 전 전 대통령이 그를 병문안하며 다시 만났다.

병세가 위중했던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이 "나를 알아보겠는가"라고 묻자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고 전해진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70년에 걸친 두 사람의 인연도 마무리됐다. 전 전 대통령의 조문이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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