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한혜숙] 산정엔 여백이 숨 쉰다

신혜숙(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산정엔 여백이 숨 쉰다


햇빛 한 줌 내리비치는

빽빽한 나무 사이로 여백이 숨 쉰다

곧게 뻗은 나무들이 거느린 잔가지

흔들거릴 때마다 삶의 갈림길이 얹힌다

산허리 걸쳐진 구름

바람 따라 쉬이 하늘 오르내리지만

지쳐버린 걸음 걸어도 걸어도

안개 속에 묻힌 산봉우리 멀기만 하다

길게 갈라진 크레바스는 얼음산의 숨구멍인가

달빛에 포개지며 두렵게 흔들거리는 전조 등불

한 줄로 엮인 생명줄 어둠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빗장 걸고 돌아앉은 눈 속 바위

서슬 퍼런 모습도 햇살 아래 미소로 반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앞선 이의 발자국

어느새 하얀 눈으로 덮이면

멈춰진 걸음 위로 추락하는 눈동자

초점 없이 두 발밑을 응시한다

골짜기마다 빛을 맞이하며 깨어나는 산봉우리

나는 밤샌 피곤함도 잊은 채

나무들이 빛과 안개의 경계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경건한 예식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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