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외국현지 사용 영문 이름으로 여권명 변경 가능" 첫 판단

외국 현지에서 사용하는 영문명에 맞춰 여권에 적힌 영문이름을 정정해달라는 신청을 거부한 외교부 조치는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여권법 시행령이 개정된 이후 법원이 국민의 영문 여권명 변경신청에 대한 거부 처분을 취소하고 이를 허용해 주도록 한 최초의 사례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강우찬)는 A군(7)의 법정대리인이 외교부를 상대로 "여권 영문성명 변경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A군은 2014년 7월 프랑스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프랑스, 벨기에에서 거주하고 있다.

A군 부모는 불어 문화권인 현지 생활상에 맞는 영문으로 이름을 표기해 프랑스 행정기관에 출생 신고를 했고 2014년 9월 A군의 여권을 신청할 때도 출생신고 시 사용한 영문 이름을 썼다.

그러나 외교부의 여권 발급업무를 대행한 서울시 종로구청은 해당 영문 이름이 로마자 표기법에 어긋난다는 이름으로 다른 표기를 써 여권을 발행했다.

A군 부모는 2019년 8월 외교부에 A군의 여권 영문성명을 프랑스 출생증명서상 영문 성명으로 변경해줄 것으로 신청했으나 외교부는 이를 거절했다.

A군 부모는 행정심판까지 청구했으나 청구는 기각됐고 지난해 10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군 사례가 개정된 여권법 시행령에서 정한 영문성명 변경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시행령에선 취업이나 유학 등을 이유로 외국에서 살면서 여권에 적힌 영문 이름과 다른 영문 이름을 장기간 사용해 온 경우 그 영문 이름을 정정 또는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취업이나 유학뿐 아니라 원고(A군)와 같이 국외에서 출생해 성장하는 등 국외에서 사회생활상 관계가 장기간 형성된 경우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어려 '유학'에 해당하는 재학기간이 짧다 해도 현지에서 수년간 사회공동체 생활을 했을 것이므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할 때 이를 성인이나 유학기간이 긴 청소년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우리나라 헌법과 유엔 아동인권 협약을 근거로 단순한 국가의 위신이나 추상적인 공익만을 들어 청구인의 정당한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태어나 지금까지 평생 불리고 쓰던 이름을 계속 쓸 수 없게 된다면 사회생활을 하며 불편과 어려움을 겪게 될 뿐 아니라 성장과정에서 많든 적든 어느 정도 정신적 혼란을 겪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법원 관계자는 "유엔 아동인권 협약을 공권력 행사의 위법성 판단기준으로 되는 실질적 재판 규범으로 사용한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고 밝혔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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