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째 이어진 이란 '히잡 시위'…"43년 전과는 다르다"

100년 동안 시위 수차례…여성 주도는 단 두 번뿐

이란 당국, 유화책 내놨지만 시위 불씨 꺼지지 않을 듯

 

벌써 석 달째다. 이란에서 22세의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게 체포된 뒤 의문사한 게 지난 9월13일 일이었다. 이란 정부 측에서는 기저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주장했지만, 유가족들은 아미니가 경찰의 폭행으로 숨졌다고 반박했다.

아미니의 소식이 알려지며 이란 전역에서는 히잡 착용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이는 단순한 히잡 착용이 아닌 반정부 시위로 격화했다. 이란 당국은 강경 진압으로 맞대응하고 있는데, 이란인권단체(IHR)는 현재까지 최소 448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몇 차례의 시위가 있었지만, 전문가들과 외신들은 이번 시위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히잡을 둘러싼 여성 인권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43년 동안 누적된 부패와 권력 남용과 같은 전체 시스템에 대한 진정한 분노이자, 지구촌의 지지를 등에 업은 해방의 물결이라는 것이다. 지난 100년 넘게 크고 작은 시위가 이어져 온 이란에서 이번 시위는 어떤 결과와 함께 끝날지 주목된다.

1906년 중동 국가 중 최초 근대화 혁명…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히잡 착용 의무화

이란은 1906년 입헌 혁명으로 중동 국가 중 최초로 근대화 혁명을 일으켰다. 1951년 석유산업 국유화, 1979년 이슬람 혁명, 2009년 녹색 운동, 2017~2021년 산발적인 경제적 시위가 이어졌다.

이번 시위의 뿌리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친미 정권이었던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이슬람 혁명이 시작됐다. 이란 최고지도자가 된 호메이니 아래에서 이란은 반(反)미 국가로 돌아섰고, 미국의 제재도 시작됐다. 

1979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히잡은 선택의 영역에 있었다. 팔레비 왕조의 급격한 서구화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반서구화'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히잡을 쓰고 다니기도 했다. 

호메이니는 1979년 3월7일 언론 통제, 공공장소에서의 남녀 분리, 음주 금지를 비롯해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했다. 현재 모든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나라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두 국가뿐이다.

이에 다음날이자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 이란 여성들은 테헤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대 의사를 표했다. 당시에도 수천 명의 여성은 "우리에게 후퇴하는 혁명이란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총리실과 최고지도자 관저로 행진했다. 그 이후 수십년 동안 이란 국민들은 정의, 자유, 평등을 말했으나, 체포돼 고문당하거나 살해당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번 시위, 1979년과 달라…GEN Z "2등 시민 되지 않을 것"

미국의 싱크탱크인 '우드로 윌슨 센터’의 중동 프로그램 착립자이자 책 '개조된 삶: 여성과 이란의 이슬람 혁명' 저자인 할레 에스판디아리는 이번 시위를 주도하는 젠지(GEN Z)는 '과거로부터 배우기로 결심한 새로운 세대'라는 데 주목했다.

1940년 이란에서 태어나 기자로 활동하던 에스판디아리는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 이란을 떠났으나, 14년 뒤 다시 돌아와 이슬람 혁명이 이란 여성에게 끼친 영향을 조사한 인물이다.

그는 ABC방송에 "이란 역사상 여성들이 주도권을 잡고 시위 운동을 시작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라며 "이번 시위는 첫 번째 시위(1979년 이슬람 혁명)의 아이들과 함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젊은 여성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18세의 어린 소녀들이 자신이 총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나온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여성, 삶, 자유!(WomanLifeFreedom!)"를 외치며 행진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포착되는가 하면, SNS를 통해 퍼진 사진 속 여학생들은 전 최고지도자였던 호메이니와 현 지도자인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의 사진이 걸린 벽을 향해 '손가락 욕'을 하기도 했다.

또 에스판디아리는 1979년 이슬람 혁명 때와는 달리 여성들의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전 세계와 연결돼 있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시위를 주도하는 젊은 층은) 그들은 서양에 사는 또래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있다"며 "2등 시민이 되고 싶어 하지 않고, 더 이상 참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이란 밖의 세계에 대해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시위들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도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당국, 유화책 내놨지만 시위 불씨 꺼지지 않을 듯

여성 억압과 함께 경제난까지 겹치며 현재 시위는 반정부 시위로 변모해 왔다. 미국의 경제 제재와 중동 전쟁과 유가 폭락 속에서도 인구의 60%를 차지하던 중산층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며 붕괴했다.

이란 복지부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가 국민총소득(GNI)의 31%를, 하위 10%가 국민소득의 2%를 차지한다. 세계은행(WB) 역시 이란이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이스라엘과 같은 이슬람 지역보다 경제적 불평등이 훨씬 크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 2019년 11월에도 경제 문제와 관련해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이란 당국은 1500명의 시위대를 살해해 '피의 11월'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시위가 3달째 이어지자 이란 당국은 한발 물러섰다. 모하메드 자피르 몬타제리 이란 검찰총장은 도덕 경찰이 해체될 것이라고 밝혔고, 이란 정부는 히잡 착용을 의무화한 현행법을 완화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다만 가난과 실업, 불평등, 부패에 대한 불만은 여전한 데다 '히잡 미착용'만으로는 여성들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시위대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 정부의 인권 탄압, 여성차별, 정치범 수감 등을 비판해온 이란계 미국인 언론인이자 인권운동가인 마시흐 알리네자드는 "히잡은 천 조각이 아닌 종교 독재의 주요 기둥"이라며 "현재의 시위가 히잡에서 시작됐을 수는 있지만, 광범위한 변화가 있을 때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히잡은 베를린 장벽과 같다. 이 벽을 허물면 이슬람 공화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시위는 성차별 정책에 반대하며 일어났고, 이란 국민은 이슬람 공화국을 끝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우리가 목격했던 이전 시위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에스판디아리 역시 "이란 여성들은 인권 운동에서 지난 60년 동안 국제적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오늘날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지지는 이란 여성들에게 많은 용기를 주고, 중요한 에너지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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