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신혜숙] 반환점
- 22-09-19
신혜숙(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반환점
달팽이의 넓은 발은 느린 걸음을 압니다
나도 이 걸음에 맞춰 나란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서둘러야 할 시간은 어둠의 집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파란 새싹이 선명하게 제 모습 새길 때
나의 발걸음은 동쪽 하늘을 향해 달음질칩니다
신발장엔 늘어나는 신발들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합니다 서쪽으로 가는 일상을 위하여
뻗어가는 냄새는 아직도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
모릅니다 마라톤 선수처럼
채우고 비우며 끌어모으는 발걸음 천적을
만나기라도 하면 달팽이처럼 점액을 뿜어야 할까요
건조해진 뇌 속
기억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달팽이는 점액을 뿜으며 면도날 위를 기어갑니다
점액이 피부를 재생하듯
시간이 내 삶을 재생하고 있습니다
유연한 더듬이의 촉각이 시력을 끌어모아 반환점의
명암을 찾아냅니다
달팽이 뿔 위에서 좁은 세상이 하늘에 노출되어
방심의 잉여 시간을 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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