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지연] 샛별예술단 2022여름 네팔 순회공연(+동영상)

최지연 샛별문화원 원장

 

코로나로 2년 동안 여름 순회공연을 가지 못했던 샛별이 이번 여름에 네팔로 가게 되었다. 지구 반대 쪽에 있는 나라로, 산과 사원의 나라다. 세계에 8,000m가 넘는 산 13개가 모두 히말라야 산맥에 있고, 그 중 8개가 네팔에 있다.

흰두교가 국교로 인구의 80 퍼센트, 불교가 10 퍼센트, 기독교는 3 퍼센트에 불과하며, 기독교 핍박이 있는 나라다.

노동자 하루 일당이 $5, 선생의 초봉이 월 $150 인데, 자동차를 사면 세금을 150 퍼센트를 내야 하고, 부동산은 미친듯이 오르고 있어 노동자들에게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

오직 희망은 외국 노동자로 가는 것으로, 듀바이나 카타르로 가면 월 $750, 한국은 $1500 이라는데, 그것도 정치적  힘이 필요 하단다.

왕정 때는 그럭저럭 살았지만 사회주의가 되면서 권력이 바뀔때마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후손을 위한 부를 축적키 위해 듀바이 등에 호텔이나 건물을 사기 바쁘다니,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갈 뿐이다.

카스트, 4단계의 신분제도 때문에 개도 먹는 마을의 우물을 먹지 못하는 천민들에게는 기독교가 희망과 해방을 안겨 준다.

1872년에 기독교가 들어 갔지만 지속되는 기독교 핍박으로 성장이 어려웠고 최근 10년 동안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기독교가 부흥하고 있는 나라가 되었지만 2018년 부터 개종 금지법을 시행하고 법을 어기면 감옥을 가게 하고 있다.

지난 12월에 남편 최창효 목사가 천국으로 떠나면서 우리 가족은 평생 선교에 우선을 두고 살았던 그의 뜻을 따라 몽골이나 아프리카에 베다니 교회를 하나 더 세우기로 했다.

마침 영어 예배에 나오시는 네팔 선교사 필립 목사님 때문에 네팔에 교회를 세우기로하자 성도들이 뜻을 모아 진행이 쉬웠다.

시골에 세우기로 했다가 70명 가량 모이고 있는 소 도시에 교회를 지어 주게 되어 비용이 더 들었지만 베다니 장터 등의 바자회를 통하여 모금을 하자, 성도들은 물론, 문화원 가족들과 여러 지인들이 협력해 주셨다.

비행기 표가 너무 비싸고, 도로 사정이 나빠 1시간 거리를 4시간 걸려야 간다고 하여 샛별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샛별 역사상 가장 작은 숫자인 9명이  떠났다.

어린 단원들이 없다고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석유 부자나라 카타르 배행기는 최고급 시설에 식사도 좋았다.

비행기 앞과 중간 부분은 자리가 차 있는데 뒷 부분은 자리가 텅 비어, 마침 뒷쪽에 배치된 우리 단원들은 모두 15시간 동안 편히 누워 잘 수 있었다.

직장 일고 바쁜 가운데 떠나는 준비하느라 피곤한 단원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로 느껴졌다.

나부터 이틀 밤을 거의 새우고 떠나지 않는가?

카타르 공화국 도화에 내리자. 사막의 더위가 무엇인지 실감이 난다.

한국 노동자들이 이런 더위 속에서 길에 아스팔트를 깔며 가족 위해 일을 했다니...

다시 5시간 비행기를 타고 산들에 둘러싸인 분지,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 내리자 아침 10시,  허술한 창고 같은 공항이 복잡하지 않아 좋았다.

밖으로 나오자 카투만두 네팔 교회 성도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 일행에게 목도리를 걸어주고 꽃을 안겨 주며 반겨 주었다.

신분이 높은 브라만, 크샤트리아는 승려, 군인, 정치인으로 주로 인도 사람 아리안 계열이고, 상업을 주도하는 바이샤, 천민인 수드라는 토착민, 몽골로이드 족은 농사와 노동자로 한국사람과 같은 모습이다.

몽골 공연을 갔다가 우리와 같은 얼굴에 얼마나 반가웠나?

네팔은 시애틀처럼 우기와 건기로 나누고, 5월에 우기가 시작되어 7월과 8월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기에  관광객들은 겨울에 방문을 한다.

우리도 겨울에 가는 것을 고려했지만, 'Morning Star Weather' , 샛별이 가는 곳마다 기적의 날씨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나서게 되었다.    

1990년, 25명의 어린 단원들과 엄마들로 40명을 이끌고 한국 순회 공연을 가면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날씨의 기적과 단원들의 건강, 2가지를 구했었다.

햇빛이 나지만 길 곳 곳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이 조금 전까지 비가 온 것이다.

미니 버스 한대와 승용차 2대가 12일 동안 우리와 함께 다니기 위해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도인 카투만두는 1970년대 초 서울의 모습이었다.

도로가 포장은 되어 있었지만 복잡한 가운데 소음, 매연, 먼지, 시내 버스들은 모두 에어컨이 없어 창문이 열려 있었다.  

카투만두 시내라는데 2시간 이상 포장도로와 비포장 도로를 덜컹거리며 가자, 필립 선교사님이 회장인 Glorios 선교회가 있는 3층 건물에 도착했다.

네팔 교회성도들과 신학생, 목사님들이 찬송을 부르며 환영을 하였고, 3층 식당에  목사님 사모님들과 여자 신학생들이 정성으로 식사 준비를 해 놓았다.

염소 고기, 닭고기, 버팔로 고기... 유기농이라 육질이 쫄깃하고 고기 맛이 깊은데 모두 카레 양념이 들어 있다 

여러 종류의 삶은 나물들은 민들레처럼 쓴 맛이라 몸에 좋을 것 같았다.

오늘 밤 안으로 산 넘어 히테라라는 도시로 가야 하기에 서둘러 떠났지만 도로사정 때문에 밤에야 히테라 호텔에 도착했다.

12시간의 시차 때문에 , 새소리에 일찍 깨어 창문을 열어 보자, 어제처럼 맑은 날씨다

호텔 식당은 이름모를 꽃과 나무들 사이에 야외 테이블을 준비해 놓았지만 시애틀에서 온 단원들은 더워서 건물 안으로 들어 와 보니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허락을 받아 찬송을 함께 부르고 에배를 드렸다.

필립 목사님이 17년 전에 세운 Glorious 교회 창립기념 예배에 도착하자, 수 백명의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우리가 2시간 늦게 도착 했다는 선교사님 말에 놀라자 네팔 사람들이 보통 2시간 늦게 모이는데 오늘은 모두 시간을 지켜서 2시간 동안 우리를 기다렸단다.

모두가 행복한 얼굴이다.

날씨가 좋아 3층 옥상에 텐트를 치고 예배를 드리는데 시애틀 사람에게는 옥상의 열기 때문에 덥다..

우리에게 익숙한 30년 전에 유행했던 복음성가를 찬양팀과 힘껏 부르는데, 40년 전의 뜨거운 한국 교회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최우리 목사가 영어로 설교를 하고, 필립 목사님이 네팔 말로 통역을 한 후에 감사와 축하의 공연을 하였다.

손님 목사님들까지 축하의 말씀을 하니, 2시간이 지나지만 아무도 먼저 가는 사람없이 축제의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들이 공연에 큰 감동을 받고, 성도들은 처음보는 공연이 신기하고, 기쁜 하루다.

1층, 2층, 베란다, 계단까지 사람들이 앉아서 밥을 먹는데, 인도식으로 손가락으로 밥을 버무려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찰기가 없는 밥을 수저나 포크로 먹기는 쉽지 않을 것, 손가락으로 카레에 버무려 먹으면 편할 것이다.

벌써 이 도로에 익숙해져 가는지, Salahi 로 가는 길은 어제 보다는 덜 힘들다

4시간 동안 가는 길에는 한국 시골 동네를 지나는 것과 비슷한데, 코끼리 부대가 사는 숲, 10미터가 넘는 뱀들이 있다는 숲을 지났다.

어린 단원들이 왔다면 코끼리와 목욕하기, 코끼리 등에 타고 숲을 돌게하는 관광 코스를 했을 것을...

2004년, 베트남 순회 공연을 했을 때에 코끼리를 타고 숲을 돌던 기억이 새롭다

일루 사모님 오빠가 담임을 하고 있는 밀란 교회는 도로와 가까웠다.닭들이 교회 앞에 돌아 다니고 성도들이 가게에서 시원한 콜라와 쥬스를 사서 대접을 하는데 시골 친척집에 온 기분이다.

교회 정문에 '수원 장로교회 60주년 기념 교회' 라고 써 있다.

교회 옆에 있는 선교센터는 최근에 수원 장로교회 장로님이 헌금을 해서 지었고, 덕분에 샛별 팀이 머물게 된다.

오늘은  네팔 베다니 교회 헌당식이 있는 날, 아침부터 가슴이 설레고 자꾸 눈물이 난다.

세례식을 하기 위해 강으로 가자 산과 들판, 그 사이의 맑은 강가 곳 곳에 검은 나무들이 화장터란다.

흰두교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강가에서 태워서 강물에 버리는데, 예수를 믿고 그 강에 들어가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는 세례를 받는 것이다.

성도들이 찬송을 부르며 격려를 하고, 22 명의 베다니 교회 성도들에게 최우리 목사와 필립 목사님을 비롯한 지방회장 목사님이 세례식을 행했다.

성도들의 찬송 소리도 은혜로웠지만,  비도 오지 않고, 덥지 않게 하나님이 구름으로 해를 가려 주셔서 감동이 더했다. 

숙소로 가서 옷을 갈아 입고 베다니 성전이 지어진 Bagmati 로 갔다.

멀리 산이 있고, 아름다운 개울아래 논들이 펼쳐 있는데 논 한 가운데 콘크리트 벽 성전이 우뚝 서 있어 멀리서도 보였다.

이웃교회에서는 용달차 같은 것을 타고 몇시간에 걸려 오고, 대부분 사람들은 에어컨 없는 시내버스, 오토바이로 왔다.

매일 비가 오는 우기에는 진 땅에 차가 들어 오지 못해 걸어 가야 하는데, 일기예보대로 비가 왔다면 우리 일행도 비를 맞으며 진 땅을 악기까지 들고 걸어야 한다. 

전통 의상, 최고 좋은 옷들을 입고 성도들이 특별한 날, 헌당식을 위해 몇 시간 동안하나님 성전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양쪽 문 사이에 "In Loving Memory Of Rev Chang Hyo Cheh' (최창효 목사 기념 교회) 싸인을 아직 후레임이 없지만 우선 붙여 놓았다.

네팔로 떠나기 이틀전에 갑자기 네팔 베다니 교회 성전에 붙일 '최창효 목사 기념교회' 라고 쓴 간판을 갖다 달라고 연락이 와서 당황 했지만, 마침 시애틀에 와 계신 조각가 안형남 선생님께서 다음날 바로 특별한 재질에 글씨로 써 주셨다. 

시애틀과 한국의 자랑인 안 선생님의 작품이 네팔 베다니 교회에 걸리게 된 것이다.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함께 찬송과 기도를 하고, 최우리 목사와 내가 양쪽 문에 친 테이프를 잘랐다.

성도들이 찬송을 부르며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3 시간에 걸친 헌당예배 행사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베다니 교회 성도들과 최창효 원로목사님의 눈물의 기도가 열매를 맺는 순간, 이래 저래 눈물의 장이 열렸다.

최우리 목사는 '아버지 최창효 목사님은 평생 선교 먼저!를 외치셨습니다. 우리 발등의 불을 먼저 끄자고 성도들이 말씀하실 때마다 선교사님들은 얼굴과 가슴에 불이 붙었는데, 내 발등의 불을 먼저 끄다 보면 평생 선교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 아버지 목사님은 천국에서 춤을 추고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전했다.

퓨젼 국악으로 '참 아름다워라'를 연주 할때는 최우리 목사와 민이 형제가 노래를 하고 피리와 기타 연주에 최시내 단장이 25현금을 연주를 하는데 인생은 짧지만 하나님의 세계가 아름답고, 그 계획과 섭리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네팔 베다니 교회 담임 목사님은 9 년 동안 성전을 위해 기도 했는데 하나님께서 시애틀 베다니 교회를 통해 응답하셨다고 인사를 하셨고, 여러 목사님들의 말씀과 축사 사이에 샛별 예술단이 공연을 했다.

'태초에...' 천지창조의 소리를 북으로 표현하고, 한민족이 세계를 향해 일어나는 춤, 우주의 소리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물 놀이, 마지막으로 돌아 온 탕자를 맞는 아버지의 한마당 잔치를 한국의 전통 한마당으로 공연 했다.

민이 형제가 상모를 돌릴 때는  '영광 영광! 할렐루야!' 태평소 소리가  베다니 성전을 가득 채웠다.

이어 네팔 베다니 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율동 찬양, 여러 목사님 사모님들의 찬양, 네팔 전통 공연단 공연이 이어졌다.

베다니 70명의 성도들은 물론, 축하하러 찾아 온 이웃교회 성도들까지 200 명인 넘는 성도들이 성전 안과 밖에서 즐겁게 식사를 하는데 우리는 망고 나무로 기념 식수를 하고 약속이나 한 듯이 자리를 떠났다.

천국 가신 목사님이 함께 있다면, 아마도 남아서 식사를 했을텐데... 

저녁에는 선교센터에서 통 돼지를  구워서 시애틀 손님을 환영해 주었다.

식사 도중에 전기가 나가서 선풍기가 돌지 못하더니, 다시 전기가 들어 오자, 모두 고마워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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