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전병두 목사] 동행일기

전병두 목사(오리건 유진중앙교회 담임)

 

동행일기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만난다면 그 감사와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민 교회가 줄 수 있는 특별한 은사 중의 하나는 공항에 도착하는 새로운 이민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입니다. 

비단 영구적인 이민이 아니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매년 가을학기에 대학교를 찾아 오는 유학생들과 방문 교수가족, 또는 파견 받아 연수 차 오는 분과 그 가족들을 공항에서 환영하는 일들이 자주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곳에 도착하기 훨씬 전, 반년 또는 일년 전부터 연락을 해 옵니다. 이곳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 기후라든가 주택 구하는 일, 자녀 학교 입학 등에 이르기까지 문의해 오는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지난 해에 유진 공항에 도착한 김 교수님 가족이 있었습니다. 처음 미국에 발을 들여 놓는 가족이라 공항 도착부터 도움이  많이 필요한 가정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도착한 이 가족을 우리 부부는 공항에서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예약 해 놓은 아파트에 입주하기전 한 주간 동안 교회에서 마련해 놓은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살림 도구들을 장만하는 일, 전화 개통, 은행 구좌 개설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찬거리를 사는 일에 동행하면서 이곳 생활을 위하여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습니다. 서너달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김교수님은 정성껏 저녁 상을 차려놓고 우리 부부를 초대하였습니다. 교수님의 사모님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던 날 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나는 순간 가슴이 찡하였습니다. 마치 친정 부모님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이 낯선 곳에도 우리를 기다려 주고 도움을 베푸는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졸이며 불안해 하던 마음이 일 순간에 안개가 걷히듯이 사라졌습니다. 너무 너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어떤 낯선 곳에 가더라도 누군가 동행하는 분이 있다면 그처럼 기쁜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행이라는 의미가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동행일기를 매일 기록하여 카톡으로 보내오는 박신구님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의 아버님은 저의 신학석사 과정의 지도교수님이셨습니다. 화란 유학을 마치고 모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들은 박교수님을 무척 존경하며 따랐습니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 우리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깊은 사랑이 구수한 부산의 억양 속에 묻어 나는 것이 좋았습니다. 어느 날 큰 아들의 이름을 웅이라고 지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던하고 인내할 줄 알며 무게있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세째 아들이자 막내로 태어 난 아들이 신구님이었습니다. 오남매 중 막내 둥이 아들입니다. 아버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신구님은 아버님의 사랑을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사랑을 넘치도록 받았지요...”. 신구님의 고백이었습니다. 건강하게 성장해 가던 막내에게서 걸음마가 늦고 불편한 모습을 발견한 것은 신구님이 아직 어린 때였습니다. 

서울 서문교회의 부름을 받고 담임 목회자로 사역할 때 쯤 정밀 진단을 받은 신구님의 병명은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질병이었습니다. 교수님 내외분은 신구님을 위하여 눈물겨운 기도와 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큰 차도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하루 24시간 침대를 의지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신구님은 “예수동행일기”를 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올해 초에 신구님이 쓴 동행일기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2년 전에 나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과 두려움의 순간을 경험했고 목숨은 건졌지만 많은 기능을 상실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조용한 내 삶에 엄청난 폭풍이 불어닥쳤던 것이다. 처음에는 차라리 나를 고통 없는 천국으로 데려가달라고 기도했었다.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고 대신 주님 손잡고 하루하루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시간이 흘러 흘러 지금 여기까지 살게 해주셨다. 천국은 언젠가는 갈 곳이고 이 땅에 살 동안 참 좋으신 주님을 경험하고 동행하는 행복을 누리도록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땐 상상도 못했다. 오늘날 내가 동행하시는 주님을 고백하고 기쁨으로 누릴 줄은... 할렐루야! 나는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는 어머니가 이사야 35장을 읽어주시며 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다.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 35:4-6)”. 

이 동행일기를 읽고 조용히 머리 숙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신구님과 동행하시며 붙잡아 주시는 우리 주님! 오늘 우리의 삶도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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