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경제전쟁' 장기화 준비하는 서방…"시간은 우리편"
- 22-07-28
단기전은 힘들지만 장기전까지 버티면 러가 '큰 손실'
단일 대오 유지가 관건…러 경제 얼마나 버틸지도 변수
러시아가 에너지와 식량 공급을 방해하며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서는 가운데,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와 경제전쟁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고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올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6개월차로 접어들며 장기전 양상을 보이자,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로 촉발한 '경제전'도 심화하는 양상이다.
이날 러시아는 독일로 향하는 천연가스 수송관 노드스트림1 공급량을 20%로 줄였다. 이대로면 유럽이 올겨울을 날 가스를 비축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장초반 단위당 약 220유로(약 29만 원)로 8% 이상 급등했다.
가스 뿐만이 아니다. 지난 주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최대 물동항 오데사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는데, 유엔·튀르키예·러·우크라 4개국이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합의한 다음 날이라 주목됐다. 이번 공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통한 국제 식량가격 진정 노력에 훼방을 놓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자국에 제재를 퍼붓는 서방과 맞서기 위해 에너지와 식량이라는 필수재 공급 억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WSJ는 관측했다.
◇러, 식량·에너지로 서방 옥죄지만…"장기전 승산 있다"
당장 경제가 요동치는 건 서방이지만, 러시아와의 경제전쟁이 장기화하면 오히려 승산이 있다는 게 서방의 판단이다.
그간 유럽 국가들은 높은 대러 에너지 의존도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는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의 유혹을 끊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공급처를 다변화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서방 당국자들은 "유럽 국가들이 대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 중인 만큼 러시아의 압박으로 인한 영향은 시간이 갈 수록 줄어들 것"이라며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말한다고 WSJ는 전했다.
현재 유럽 당국자들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차원과 각개전투로 아제르바이잔, 알제리,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노르웨이 등과 에너지 공급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
서방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해 유럽을 위협하는 행보를 계속하면, 궁극적으로 '가장 큰 고객'을 잃는 역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WSJ는 부연했다. 러시아 경제에서 비중이 가장 큰 부문은 화석연료 수출이고, 가장 큰 수출처는 유럽이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제라드 디피포 선임연구원은 "유럽이 제재를 견지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경제적 입지는 상당히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러시아는 올해 심각한 경기침체에 직면해 있으며, 중요한 기술과 기계 수입처를 찾지 못해 고군분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 소비자들은 서구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지 못하고 있다.
미 당국자들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에 대한 세계 반도체 수출은 90% 감소했다. 국제금융연구소의 클레이 로워리는 올해 러시아 경제가 5~10% 뒷걸음질 칠 것으로 추산했다. 러시아 당국자들 역시 올해 자국 경제규모가 4~6% 수축할 것으로 전망했다.
엘비라 나불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주 금리 인하 발표 뒤 기자들과 만나 "경제 하락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제재 초반 급락했던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최근 회복됐지만, 이는 러시아 개인과 기관에 부과된 금융 제재 때문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미 재무부 관계자는 "러시아에서 돈을 빼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출구는 없다"고 말했다.
서방이 추가 제재 옵션을 사용할 여지도 얼마든 있다. 독립단체인 러시아 제재 국제워킹그룹의 제이콥 닐은 "해외 에스크로 계좌에 러시아의 국제 에너지 수입을 강제하는 등 과거 이란 등에 했던 강력한 제재 카드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더 많은 러시아 은행을 국제결제망 스위프트에서 차단하는 안도 가능하다.
서방 역시 러시아 경제를 사방팔방에서 옥죄고 있는 것이다.
◇단결 유지 여부가 '경제전' 승리 최대 변수
서방과 러시아의 경제전에서 서방이 승리하려면 어떤 어려움에도 서방이 지금의 단일대오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맹점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WSJ에 "우리 27개 회원국은 매우 야심찬 제재를 채택하고 있다. 각론에선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며 에너지·식량 위기에도 대러 단일대오가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자신했다.
그러나 최근 에너지 문제에서 EU의 단일대오는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헝가리는 EU가 내린 러시아 석유 금수 조치 시행을 미루고 있고, 대러 의존도가 낮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EU의 가스 소비 15% 감축안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과 EU 간에도 의견차가 있는데, EU가 석유 금수로 가닥을 잡은 반면, 미국은 수입 자체는 지속하되 가격상한제를 도입해 러시아에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만 자제해달라고 제안하고 있다. 국제원유시장에서 러시아산 공급이 아예 끊기면 국제유가가 급등할 것을 우려해서다.
EU 국가들은 여전히 러시아에 에너지 수입을 위해 매일 약 10억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물론 올 연말 약속한 석유 금수조치가 시작되면 상황은 바뀔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방향은 아직 알 수 없다.
한편 이 같은 공세에 러시아 경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도 중요한 포인트다. 러시아는 외환보유고를 가득 채우고 외채를 한껏 낮춘 뒤 이번 전쟁에 뛰어들었다. 러시아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최소 1년 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서방은 평가하고 있다.
서방의 제재로 해외에 적지 않은 자산이 동결돼 있지만, 여전히 약 3000억 달러의 가용 준비금을 보유 중인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 국부펀드도 약 200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절반이 달러와 유로로 돼 있다.
또한 에너지 공급처 다변화 노력 중인 EU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역시 이번 전쟁 국면에서 인도와 중국, 아프리카 국가에 석유 수출을 늘리며 새 고객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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