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유세진] 아보카도 씨의 꿈

유세진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아보카도 씨의 꿈


갓 구운 식빵 위에 잘 익은 아보카도를 얇게 저며 두툼하게 올린다. 노른자가 덜 익은 계란 후라이를 그 위에 얹고 스리라차 소스를 쭈욱 뿌린다.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꺼내 봉긋한 곳을 톡 터뜨려 자르면, 주르르 노른자가 버터처럼 흘러내린다. 아보카도마저 입에서 사르르 녹으니 부드러움의 끝판왕이랄까. 여느 브런치 식당 못지않은 근사한 아침 메뉴, 아보카도 에그 토스트는 나의 최애 레시피다.

20여 년 전 미국에 방문했을 때 아보카도를 처음 맛봤다. 달지도 않은 게 과일이라니 참 낯설었다. 그런데 어라, 먹으면 먹을수록 고소한 맛에 빠져들었다. 여러 채소를 곁들어 김에 직접 싸 먹는 일명 LA 김밥에는 아보카도가 들어가야 제맛이다. 와사비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얼마나 맛난지.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숲 속의 버터를 찾아 백화점 식품 코너를 헤맸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희귀한 식재료라 가격이 만만치 않아 선뜻 살 수가 없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아보카도가 제법 인기인가 보다. 슈퍼푸드 대접을 받으며 건강 뿐만 아니라 멋스러운 요리에 단골 재료로, 음식 뿐만 아니라 화장품 원료로도 주목받는다. 몇 년 전 한국 방문 중에, 전 세계에서 제주도 스타벅스에서만 판다는 아보카도 스무디를 맛보며 언제부터 아보카도가 이렇게 흔해졌나 격세지감을 느꼈다.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집에는 마당 한가운데 아름드리 아보카도 나무가 있었다. 매년 이삼백 개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우리도 다람쥐도 실컷, 아니 헤프게 먹었다. 막 딴 아보카도는 껍질이 얇고 신선했다. 말랑말랑 익었을 때 숟가락으로 살살 긁으면 돌배기 아들의 이유식으로 딱이었다. 게다가 널찍하게 떡 벌어진 이파리는 윤기가 좌르르 흘러 뒷마당의 운치를 더했다. 굵은 가지에 그네를 매달고 좋아하던 꼬마 아가씨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시애틀로 이사 와서는 아보카도 나무는커녕 그렇게 흔하디 흔한 오렌지, 레몬 나무도 동네에서 통 볼 수가 없다. 대신 딸기 덤불들이 지천이고 요것도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날 아들이 학교에서 발아시킨 아보카도 씨를 집으로 가져왔다. 이쑤시개 세 개가 꽂혀 있는 씨가 물이 가득 담긴 컵에 걸쳐 있었다. 두꺼운 씨를 뚫고 싹과 뿌리가 나와 있는 게 신기했다. 며칠 안 가서 줄기가 쑥 솟고 파란 새싹이 펼쳐지길래 서둘러 마당에 옮겨 심었다. 블루베리 나무 옆에 아보카도 나무라, 상상만 해도 모든 걸 다 가진 듯 행복했다. 하지만 구름과 비, 추위는 이곳의 일상이었고 결국 가녀린 아보카도 모종은 얼어 죽고 말았다.

그 이후로 아보카도를 먹을 때마다 매끄럽고 탐스러운 씨를 쉽게 버리지 못했다. 다시 발아시켜 볼까,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단념했다. 그런데 친정 엄마가 인터넷을 보고 따라 했다며 아보카도 씨를 거실 천장까지 닿는 관엽수로 키워낸 사진을 보냈다. 한국 아파트 환경에서도 자랐다면 여기서 못 자랄 리 없다. 얼른 투명한 컵을 싱크대 앞에 두고 씨를 물에 반쯤 담갔다. 설거지할 때마다 언제 싹이 나올까 유심히 살폈다. 한 달이 지나서야 표면에 금이 가고, 두 달째 씨가 깨졌다. 마침내 석 달이 돼서야 싹이 트고 여린 뿌리가 내려왔다. 참으로 더딘 과정이었다.

100일의 인내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기 아보카도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했다. 보랏빛 줄기는 하늘을 향해 쭉 뻗었고, 반질반질한 잎을 하나 둘씩 우아하게 펼쳤다. 뿌리가 돌돌 말리며 굵어질수록, 씨를 담은 유리컵은 점점 버거워 보였다. 흙으로 옮겨야 하는데… 생각뿐,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적댔다. 혹시라도 섣부른 이별을 또 맞게 될까 봐 주저하는 사이, 아보카도 모종은 묘목이 되었다.

텃밭에 채소 모종도 다 내다 심었는데 여전히 유리컵 신세인 아보카도가 눈에 밟혔다. 더 이상 미루기 미안해서 화분에 흙을 담고 옮겨 심었다. 오랜만에 좋은 해도 실컷 쬐라고 텃밭 곁에 내다 놓았다. 며칠 날씨가 좋길래 크게 걱정 안 했다. 그런데 물 주러 나갔다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윤기 흐르던 이파리가 옅은 갈색으로 타들어 갔다. 부랴부랴 부엌으로 데리고 들어와 물을 듬뿍 줘 봤지만 소용없었다. 때늦은 심폐소생술은 쪼그라든 잎사귀를 결국 펴내지 못했다. 이파리만큼 내 가슴도 까맣게 탔다. 흙이란 새로운 환경과 유리창 밖의 자연광이 낯설고 버거웠을 작은 나무가 불쌍했다.

죽어가는 나무를 붙들고 있으면 뭐 하겠냐고 흙이라도 재활용하자고 남편은 아보카도에 사망 선고를 내렸다. 내 손으로는 도저히 내다 버릴 수 없었던 터다. 또다시 맞은 이별. 오래 곁에 두었던 거라 싱크대 앞 빈자리가 휑하다. 허전한 맘을 달래려 인터넷을 뒤졌다. 이번엔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게 원인이다. 뿌리가 내리고 바로 흙으로 옮겨야 했다. 어린뿌리가 일찌감치 흙에서 에너지를 얻는 법을 훈련받아야 했는데 너무 오래 편안한 물에서 쉽게 키웠다. 세상이 험난하다고 줄곧 끼고 있던 내 사랑이 아보카도 씨가 나무가 되는 꿈을 막고 말았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잦은 헤어짐은 면역력을 키웠다. 망설임 없이 다시 아보카도 씨를 물에 담근다. 넘어지는 경험도 꿈으로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이겠지. 앞으로 몇 번의 이별을 감내해야 할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아보카도 씨가 나무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꿈꿔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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