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흑인·성소수자'…원숭이두창보다 빨리 퍼지는 편견들

WHO, 병명에 동물 이름 넣지 않는 지침 따라 개명 검토…'흑인·성소수자 질병'도 편견

백순영 교수 "증가속도 매우 느린데 공포심 과장되고 있어…의료체계 나쁜 경우에나 문제"

 

세계보건기구(WHO)가 오는 23일 긴급회의를 열고 원숭이두창 관련해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할지 결정하고 이와 별도로 빠른 시일 내에 '차별'과 '낙인'을 막기 위한 새 이름도 찾기로 했다. 원숭이두창이라는 이름이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다고 보아서다. 이것 말고도 앞서 원숭이두창 관련 보도에 흑인과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담겨 있다는 우려도 나온 바 있다. 

지난달 6일 영국의 환자 보고 후 약 40일 동안 원숭이두창은 풍토병지역인 아프리카가 아닌 곳에서 약 3100명의 확진 및 의심환자를 발생시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애꿎게도 원숭이와 흑인,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찍히고 있다. 애초부터 병을 옮기는 매개체도 아니고 숙주였을 뿐인 원숭이가 병명에 들어갔고, 최근 서방 국가들의 발병을 알리는 보도에는 아프리카인들의 손 사진이 쓰이고 있다. 또 넓은 범위의 밀접 접촉 중 하나일 뿐인 동성애자간 성접촉이 감염 경로로 부각되면서 이들 성소수자가 걸리는 병으로 와전되고 있다. 

2019년 말 갑자기 시작된 코로나19의 여파로, 최근 2년여간은 여러 공포증과 혐오가 나타났다. 코로나19 자체에 대한 공포증은 물론 백신 공포증, 서구의 경우 아시아인(중국인)에 대한 혐오 등이 이어진 것이다. 이제 원숭이두창으로는 아프리카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 국제 과학자 30여명이 소속된 단체는 원숭이두창이란 이름이 차별적이고 낙인효과를 낳는다며 긴급한 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온라인 성명을 통해 "현재 글로벌 확산 국면에서 (아프리카에서 유발했음을 시사하는) 이 바이러스에 대한 지속적인 언급과 명명법은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차별적이고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숭이라는 단어가 아프리카를 암시하고, 더욱이 특정 동물의 이름을 따 병명을 짓는 것은 안된다는 WHO 지침에도 어긋난다고 보았다. 

WHO는 이미 2015년에 질병 이름에서 피해야 할 단어로 지명(중동호흡기증후군, 스페인 독감), 사람 이름(크로이츠펠트야콥병, 샤가스병), 동물 또는 식품 이름(돼지독감, 조류독감, 원숭이두창), 직업(재향군인병) 등을 꼽았다. 당시 WHO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문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특정 질병명이 특정 종교 또는 민족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무역 등에 부당한 장벽을 만들고, 불필요한 식용 동물 도살을 촉발한다"고 지적했다. 병명 자체만으로 특정 사람들의 삶과 생계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신 WHO는 질병이 일으키는 증상,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계절성이 있는지, 병원체가 무엇인지 등의 정보를 담는 것을 좋은 작명 사례로 들었다. 

유럽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최근의 원숭이두창을 흑인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도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최근 여러차례 문제로 지적됐다. 가톨릭의대 백순영 명예교수는 "수포가 생긴 흑인의 손 사진을 주로 싣는데 언제 자료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렇게 심한 경우는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원숭이두창은 1958년 덴마크 실험실에 있던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돼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원숭이는 숙주일 뿐 설치류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주범으로 추정된다. 1970년에는 사람으로의 전파가 처음 확인됐다. 

백 교수는 "숙주가 달라지면 병의 증세는 약해진다. 사람두창은 치명률 25%였는데 소의 두창(우두) 바이러스를 백신으로 이용해 약화시켰다"면서 "흑인 사진 사용과 그것도 너무 심한 증세인 사진을 쓴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8일 "원숭이두창이 (아프리카가 아닌) 고소득국가에 나타나자 국제사회가 이제서야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불행한 단면"이라고 지적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해당 질병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결합시켜 비합리적인 증오를 증폭시키는 셈이다. 

성소수자들의 파티가 원숭이두창 확산 계기인 것으로 추정되기에 확진자가 되면 성적인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있는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원숭이두창은 다양한 인체 분비물을 통해 감염된다. 보호장구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침구를 정리하다가 감염되는 경우도 있기에 감염자가 모두 성소수자라고 볼 수는 없다.

백순영 교수는 "(WHO나 언론 보도 모두) 원숭이두창에 대해 너무 과장되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있다"면서 "전세계의 증가 속도는 지금 매우 느린 편이다. 증상이 나타나면 원숭이두창인지 모를 수가 없고 무증상자가 옮길 수 있냐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망자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료체계에 문제가 있는 나라에서 원숭이두창에 걸려 면역력이 낮아진 사람이 다른 바이러스에 2차 감염 됐을 때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내에는 아직 들어와 있을 것 같지 않다. 걸렸어도 자연적으로 낫기도 하고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지 않는데 너무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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