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문희동] 운수 좋은 날

문희동(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운수 좋은 날

 

배려에는 관계를 바꾸는 힘이 있다. 상대를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배려할 때 세상은 더 살 만해지지 않을까.

부부간에는 관계통장이란 게 있다. 통장의 잔고에 따라 두 사람의 관계가 닭살 커플이 되기도 하고 웬수사이로 변하기도 한다. 은행 통장과 마찬가지로 관계통장에도 입출금이 있는데 입금에 해당하는 행동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희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출금에는 잔소리, 화풀이, 무시, 폭력 등의 행동이 있다.

관계통장 잔고를 많이 쌓아 두려면 부부 사이에 주고 받음이 공평해야 하는데 이때 생겨나는 게 이해와 배려다. 신뢰를 형성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을 만들어 낸다.

얼마 전 일요일 아침, 고속도로에서 낭패를 당했다. 예배에 늦지 않으려고 승용차의 가속 페달을 밟아 댔다. 제한속도가 60마일이지만 이런 때는 어림없는 속도였다. 무조건 달려야 한다. 늦게 갈 수는 없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여태껏 잘 달리던 차의 마일 계기가 내려가며 속도가 느려졌다. 나는 당황해 옆차선을 살펴보고 뒤에서 차가 오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차가 없어 급히 핸들을 꺾어 갓길에 차를 세웠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만약 옆 차선이나 뒤편에서 차들이 달려왔다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내 차선을 메우며 차들이 60마일 이상으로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다.

돌연 고아 신세가 된 듯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찌해야 할지 가늠이 안됐다. 비상 등을 켰다. 그리고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조심스럽게 보닛을 열고 기술자인 양 이곳저곳을 만져 보았으나 아는 게 없었다. 

도로변 코스모스가 바람 결에 흔들리며 방실대는 게 꼭 나를 비웃는 듯했다. 중고차라 이런 일이 생겼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내 처지가 안쓰러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운전대를 잡고 여러 생각을 해보았지만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목사님께 사정 이야기를 드리고 교회 결석을 통보했다. 얼마간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그때 차 뒤편에서 깜박깜박 헤드라이트를 켠 도로 순찰차가 달려왔다, 구세주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경찰관이 차창을 두드렸다. 나는 문을 열고 그를 쳐다보았다.

“실례합니다. 왜 차를 세웠습니까?”

갑자기 엔진이 꺼져서 차를 운전할 수 없다고 했더니 나를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가 운전대에서 시동을 걸어 보았으나 걸리지 않았다. 엔진을 이곳저곳 만졌으나 원인을 발견치 못했다. 운전 면허증과 차 보험증을 제시하라고 했다. 죄를 지은 듯 가슴이 뛰었다. 그 와중에서도 얼마짜리 고지서를 주려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경찰관은 면허증과 보험증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오늘 당신 사정이 좋지 못하니 한번은 봐준다. 다음부터는 차 정비를 잘하고 다녀라.”

조언까지 하지 않는가. 하루의 불운이 행운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는 견인차 회사에 연락해 차를 정비소에 갖다 주기로 약속을 받고 돌아갔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머리만 조아리고 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간의 고통이 순식간에 씻어지는 듯했다. 삶의 지혜를 깨닫는 시간도 가졌다.

그의 배려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차를 정비소에 맡겼다. 그 후부터 나는 출반 전 자동차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모든 건 경찰관의 배려 덕분이 아닌가,

 

그는 내 잘못을 탓하지 않고 나를 믿어주는 신뢰의 자세로 내게 아량을 베풀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면 자기도 모르게 행복감을 느끼며 상대를 존중한다. 배려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 일로 나는 경찰관이 친밀하게 느껴진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서로 배려하다 보면 사랑은 절로 생겨날 것이다. 그건 부부간의 의무이고 책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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